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데 마치 천 년을 사는 것처럼 장막을 치고 호들갑을 떤다. 한 됫박의 쌀과 한 다발의 장작이면 구들을 데우고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음에도 욕심은 끝이 없고, 곁눈질에 바쁜 눈동자는 멈출 기미가 없다. 내 손에 들린 떡은 늘 부족하고 꼴사납다. 이웃집 감나무는 올해도 꽃이 만발했다.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꽃이 피었으니 가을이면 분명 가지가 찢어지도록 열매가 달릴 거라 배 아파한다. 울 안에 아름드리 감나무는 그저 늙은 고목에 지나지 않는다. 가을이면 쭉정이 같은 감이 몇 톨 매달릴 뿐이다. 변변치 못한 그늘을 그것도 그늘이라고 드리우고서 우쭐대는 모습이라니.... 지켜보던 남자는 감나무를 지나칠 때마다 혀를 끌끌 차고야 만다.
"꼴같잖은 게 어디 건방지게 거들먹대고 난리람!'
종국에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끼를 들지도 모른다. 뚝뚝 땀방울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씩씩 콧바람을 내뿜으며 늙은 감나무에 도끼를 휘두를 판이다. 욕심이다.
감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백 송이의 꽃이 피고 그중에서 반쯤 열매를 맺었다고 하자. 그러면 늦가을 감나무 가지에 쉰 개의 감이 매달려 있을까? 그럴 일은 없다. 사람의 손을 빌어 솎아내지 않아도 나무는 알아서 어린 감을 솎아낸다는 것을 안다. 비바람의 힘을 빌리고 여름날의 햇살에도 기댄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열매를 키우고 계절을 맞는다. 욕심의 크기도 결국은 내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만이다.
흘러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한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는 건 안다. 옹달샘에서 시작된 냇물이야 골짜기를 벗어나 들을 흐르고, 그렇게 골골마다 시작된 냇물을 만나 강을 이루고 바다에 이른다지만 나는 흘러 어디로 가는지 끝내 알지 못한다. 가는 곳이 있는지 조차 모른다. 머물지 못하니 끝없이 떠돌다가 일순간 숨을 멈추고 그것으로 끝이겠지. 그러니 주렁주렁 뭔가를 매달고 붙든다는 것도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몇 됫박의 쌀과 서너 다발의 장작이면 충분할 터다. 하기는 그것도 없어 가끔 곤란을 겪기도 한다만, 그야 뭐 길에서 만나는 소나기쯤 될 거라서 품 좋은 나무에 기대 지나치기를 기다리면 된다. 뿌옇게 흐려졌던 하늘은 쏴아 몰려간 비바람에 말갛게 갠 얼굴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조용 흐를 일이다. 계절이 바뀌는 세월처럼 덩달아 나도 흘러야 하고 가을, 겨울, 계절에 놀라며 허허, 그거 참 헛기침을 하면 된다. 돌담 위에 소복한 눈처럼 쌓였다 흩어지겠지. 봄날이 처연한 건 피었다 지는 꽃잎 때문이듯 세월이란 것도 그렇다. 그래서 인생이 아름답기도 하고. 머물러 썩는다면 그것도 아까울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