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면 바람이 서성이고 햇살이 싱긋 웃었습니다. 온갖 새들이 아침을 깨우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숨을 헐떡이며 벽을 기어오른 나팔꽃 한 송이가 뚜뚜뚜 나팔을 불어주곤 했습니다. 지루할 틈이 없었지요. 틀어박힌 방과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였는지 모릅니다.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이면 창에 귀를 대고 바깥세상을 염탐했습니다. 굳이 창을 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세상이 그림처럼 펼쳐졌거든요. 꽃이 피었고 나비가 날았습니다. 뙤약볕이 기승을 부리던 날에는 너 나 할 것도 없이 그늘을 찾아 종종걸음으로 몰려가던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요. 웃었습니다. 소리를 죽여가며 창에 귀를 바짝 붙였습니다. 장마당을 찾은 약장수의 입담처럼 세상이 걸쭉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겠지요. 세상이 열리고 풀 한 포기 싹을 틔웠을 그날에도 바람은 불었을 터입니다. 꽃이 피었으니 나비가 빠지면 서운했을 게 분명합니다. 꼬물꼬물 흙마당을 기어가는 애벌레도 몇 마리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허리를 깊숙이 숙여야만 겨우 보이는 개미도 머리에 알 하나를 이고 이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비가 오려나 봅니다. 꾸물꾸물 먹구름이 몰려들더니만 이내 바람이 불었습니다. 품 좋게 뒤란을 지키고 선 나뭇가지가 춤을 춥니다. 정신이 사납다 싶으면 열린 창을 닫았습니다. 창을 닫더라도 바람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라보는 이가 있던 없던 상관도 없습니다. 그렇게 있어야 할 것들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겠지요.
ㄱ, ㄴ, ㄷ.... ㅏ, ㅑ, ㅓ, ㅕ....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쓰던 글자에 뜻을 붙이고 의미를 새기던 날부터였을까요. 바라보던 것들을 옮겨 적었습니다. 삐뚤빼뚤 흙마당의 꽃들이 공책으로 건너와 꽃을 피우더군요. 아침이면 창가에 앉아 어찌나 시끄럽게 울던지 이불을 뒤집어쓰게 만들던 참새란 놈들도 낯짝 두껍게 공책의 빈 줄에 앉더군요.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여전히 시끄러웠습니다. 어쩌겠어요. 목이 쉬도록 울어라 하였지요.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던 그 'ㄱ' 자가 요거였구나 하던 날부터였을 겁니다. 졸졸졸 흐르는 냇물도 한 바가지 퍼올려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밤이면 찰랑찰랑 바람에 흔들리던 별도 서넛 따다가 이불속에 꽁꽁 감췄습니다. 볼이 터져라 도토리를 물고 가을을 넘나들던 다람쥐도 한 마리 붙들어다 재롱을 보았지요.
눈이 내리고 뾰족하게 자란 고드름이 햇살에 반짝였습니다. 하늘은 또 어찌나 파랗던지 마치 바다를 뒤집어놓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을 가슴에 잔뜩 품은 날에는 여지없이 파도 출렁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갈매기가 떼. 지어 날고 시퍼런 바다가 갯바위에 허연 숨을 토해내었습니다. 운이 좋은 날에는 돌고래도 한 마리 하늘가에 뛰어오르기도 했습니다.
몸에 새겨지는 기억처럼 날마다 끄적끄적 그리고 적었습니다. 창문에 바짝 붙인 귀로 들었던 바람이며, 두 눈 가득 담았던 산골짜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날마다 새겼지요. 늙은 나무가 자랑삼아 들려주던 나이테 같은 이야기가 어쩌면 끄적끄적 쓰고 새긴 나의 노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문장의 꽃이 피고 몇 줄의 노래가 밤하늘의 별처럼 찰랑거립니다. 이른 새벽 딸랑거리며 골목에 내려앉은 어둠을 몰아내는 두부장수의 종소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나의 노래로 새벽을 열고 때때로 흥얼흥얼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대 있다고 하면 분명 또 끄적여 글 한 줄 쓸 터입니다.
"아침이면 꽃으로 핀 그대 있어 나는 눈을 뜨고 밤이면 두 눈 감고 노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들어줄 테지요? 그러면 글쟁이의 봄입니다. 나는 노래할 터이니 들어주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