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뭐 필요한 거 없니? 받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봐?' 묻는다면 무엇을 받고 싶을까? 거꾸로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면 어떤 게 좋을까 생각해 봤다. 물론 여기서의 무엇은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에 국한된 질문이겠지만, 물질을 벗어난 무엇도 해당이 된다면 '평온'을 선물 받고 싶다. 무엇에도 치우침이 없어 조용하고 편안한 것, 그것이면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호숫가에서 졸고 있는 갈대라든가, 파란 하늘에 점점이 박힌 흰 구름의 머묾이라든가 하는 고요가 때때로 부럽다. 시끄러운 것에 휘둘리는 일상은 지치고 버겁다. 너무 과한 욕망도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요, 터질 듯 뛰는 사랑의 감정도 몸이 견디기엔 너무 많은 세월을 살았구나 싶기도 하다. 적당하다는 것에서의 적당이 제일 좋겠지만 그 적당함을 계량할 수 있는 분별이 없으니 조울증 환자처럼 조증과 울증의 넘나들고야 만다. 고요한 찻잔에는 그래서 날마다 바람이 일고 비가 내린다. 때로는 태풍이 서넛 일어나기도 하고 가끔 된서리가 내리기도 한다. 계절이 뒤죽박죽 혼재된 시간 속에서 옷깃을 여미게도 되고 홑겹의 이불을 걷어차며 잠이 든다. 고요하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거친 욕망에 숨을 헐떡이기보다는 보드라운 등 쓸어주며 살포시 안아주면 좋겠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체온이면 적당한 온기일 터다. 사랑의 말이란 것도 그렇다.
"오늘 그대 보고 싶어서 죽을뻔했어!"
뜨거운 고백의 말도 좋겠지만
"문득, 점심은 뭘 먹었을까? 궁금하더라고...."
말끝을 흐리게 되는 말로 너의 안부를 묻는 게 오히려 더 좋아지는 거. 살랑살랑 불어 가는 바람에 머리를 말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평온하다'는 말은 조용하고 편안하다'라고 설명되어 있듯, 하루하루 나의 일상도 욕심에 휘둘리지도, 그렇다고 의욕상실의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이지도 않을 그 평온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굳이 선물을 주고 싶다면 평온함을 선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채찍을 휘두르며 한 방향으로 다그치는 격려나 응원은 이미 찻잔에 바람을 일으키는 시끄러움일 터다. 속이 시끄러우면 하던 짓도 멈출 수밖에는 없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 맥을 출 수가 없다.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태초의 혼돈으로 끌어당긴다. 늘어지고 쳐져 고요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실상은 태풍의 눈에 갇힌 고요일 뿐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지만 흔들리지 않는 나였으면 했다.
때때로 말꼬리는 흐려지고 몸뚱이는 방바닥을 파고들면 게으른 며칠이 하품처럼 자리를 잡는다.
"아, 싫어.... 귀찮아!"
바람에 머리를 감는 날이면 바람에 맞서는 나는 찾지 못할 수도 있다. 이미 바람이 되어 천지사방에 흩어진 나만 남을 터라서 그렇다. 평온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너의 고운 선물이 얼마나 향기로운지, 다시 끄적이는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