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사진 한 장 띄워놓았다. 사진에 담긴 풍경은 바닷가 둘레길이다. 남 녀 각 한 명씩 피사체가 되어 난간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하얀 셔츠를 입은 여인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밀고 섰다. 길의 왼쪽에는 초록이 짙은 숲이 푸른 손을 뻗고 있었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초록의 숲 사이로 뻗은 길은 그래서 아름다웠다. 맑은 햇살 한 줌에 풍경이 반짝였다.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갈 터였다.
사진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은 거기까지다.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은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움에 환하게 웃었다. 호호 깔깔 장단을 맞추는 웃음소리에 발걸음은 또 얼마나 유쾌하고 가벼웠을까? 상상하게 된다. 사진 한 장을 손에 쥐었지만 그 사진만으로 풍경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미완의 풍경인 거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드높인 대 문호의 작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글의 완성은 독자의 상상이 더해져 이야기를 완성했을 때 미완의 굴레를 벗는 거다. 풍경사진도 마찬가지다. 손에 쥐고서 요리조리 뜯어보며 이야기를 보탰을 때 비로소 풍경도 완성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풍경은 허전하고 밍숭밍숭 간이 맞지 않는다. 소금이 모자라거나 마늘 한 숟가락이 빠진듯한 싱거움을 느낄 수밖에는 없다. 동해의 푸른 물과 백두산의 기암절벽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살피는 건 그 안에 숨 쉬는 사람인 거다. 사람 없는 바다와 바위덩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은 지지고 볶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해져야만 동해바다 푸른 물도 넘실대는 의미를 얻는다.
나만의 상상을 더해가며 바라보는 사진은 그래서 더 재밌다. 의도된 바와 나의 상상이 찰떡궁합으로 맞아떨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다. 상상이라 하지 않던가. 재잘재잘 엉뚱한 소문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
"얘? 꽃순이 너는 앞으로 한 발 나오고 철수는 배 좀 집어넣어라! 잠깐만 숨을 좀 참고 배에 힘을 딱 줘봐. 응
풍경 하나 사진에 담자고 흰 상의에 여인네는 연신 잔소리를 쏟아내고 있었고,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누군가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어지간히 좀 해라! 남들이 보면 뭐 대단한 거라도 하는 줄 알겠다. 하하하"
입을 삐죽 내밀고 뭐라 떠들고는 있었지만 다들 즐겁기만 했다.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이었다. 그것도 얼릴 적 추억을 함께한 동창들의 나들이여서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날아가는 참새 한 마리에도 까르르 웃음꽃을 피우던 친구들이다.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나이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도 없었다.
"어쩜 지지배 넌 하나 달라진 게 없니?"
"얘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야. 너야말로 주름 하나 없이 똑같이 생겼니? 호호호"
옆에서 듣고 있자면 정말 하나 달라진 게 없는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화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하하 호호 틈을 파고드는 웃음소리는 맛을 더하는 양념이었다.
5월의 햇살이 말갛게 부서졌다. 덩달아 부는 바람도 생긋 미소 몇 모금 남겨놓고는 둘레길을 따라 총총 불어갔다. 갯바위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싱그러움을 더했고 하릴없는 갈매기의 날갯짓에 하품 같은 한가로움이 들러붙었다. 이쯤 되면 풍경 하나가 뚝딱 제 모습을 갖췄다. 바라보는 풍경은 하나라고 해도 가슴에 담기는 모습은 천태만상일 수밖에는 없다. 각자의 입맛에 따라 소금을 빼기도 하고 고춧가루를 더해 매콤하게 무쳐내기도 한다. 누구는 식초 몇 방울을 떨어뜨려 새콤하게 비벼내었고, 누구는 신혼의 단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는지 설탕 한 스푼의 달달함이 좋다고 했다.
그게 좋았다. 그대 좋은 날에 웽가당댕가당 바가지 몇 개가 뒤집어지고 쨍그랑 접시 서넛 깨지면 대수랴. 왁자지껄 지지고 볶는 모습들이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수수만년 세상 모든 것들 품에 담은 바다는 그래서 짭조름 간이 배었고, 시퍼렇게 멍울이 들었지만 그게 바다였다. 자지러지는 이야기 듬뿍 담긴 풍경사진 한 장 앞에 놓고 짭조름 입맛을 다셨다. 맛깔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