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꾹딸꾹 그대

by 이봄


통통통통 포구를 빠져나가는 통통배의 선미에는 누구랄 것도 없이 울긋불긋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노랗고, 빨갛고 눈에 가장 잘 띄는 색깔을 골라 깃발을 만들어 장식한 부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목 좋은 바다에 그물을 내리고, 이미 이곳엔 그물이 내려져 있음을 알리는 부표였다. 몇 개의 그물을 더 내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을 때 눈에 잘 띄어야만 했으므로 깃발은 하나 같이 강열한 원색을 사용했다. 통통배 네댓 척만 한꺼번에 포구를 빠져나간다고 해도 나부끼는 깃발들이 장관이었다.

찢어진 그물을 일일이 다시 꿰매고 그물코에 들러붙은 오물을 털어내는 것으로 조업준비는 시작됐다. 미끼로 사용할 얼린 물고기를 채웠다. 만선을 꿈꾸는 기대만큼이나 선창엔 얼음도 가득 채워 넣었다. 한동안 망망대해를 떠돌아야 하는 만큼 물이며 채소를 수레 가득 실어 날랐다. 참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줄 라면도 몇 상자를 실었고, 뭐든지 남아 썩는 한이 있더라도 넉넉히 준비했다. 모자라면 낭패였다. 슬리퍼 경박하게 찍찍 끌며 다녀올 수 있는 동네 편의점이 아니었다. 수십 가지도 넘는 물품목록을 손에 들고서 하나씩 빨간 줄을 그으며 구매를 해도 종종 빼먹는 것들이 생기기도 했다. 고기를 잡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에 버금갈 만큼 출항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시작이 반이란 말은 결코 허세도 아니었고 막연한 위로의 말도 아니었다. 지난한 준비의 과정을 온전히 끝내야만 깃발을 바람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거였다. 엔진을 켜고 내렸던 닻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진행이었고, 성공이었다. 잔뜩 부푼 가슴으로 선수에 올라 거들먹거려도 좋았다.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은 그래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박수였다.

찢어진 그물을 꿰매고 그물코에 들러붙은 오물을 털어내듯, 먹물이 잔뜩 말라붙은 붓을 빨았다. 맑은 물에 담가 붓을 불리고는 엄지와 검지, 중지를 이용해 가볍게 조물조물거리면 묵었던 먹물이 시커멓게 빠져나왔다. 작은 붓 하나에서 어찌나 많은 먹물을 토해내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틀어놓은 수돗물은 연신 검게 변해 하수구로 흘러들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말들이 그만큼 많았구나 놀라고야 만다. 주절주절 중얼중얼 말을 만들고 세월을 떠들었다는 증거가 검은 먹물로 항변하는 것만 같았다.

젖은 붓을 꾹 눌러 물기를 빼내고는 남은 물기로 붓끝을 뾰족하게 다듬는 것으로 빨래는 끝이었다. 휘어지고 꼬부라진 붓은 쓰임을 다한 무뎌진 창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전장으로 떠나는 병사의 창끝처럼 흩어지지 않은 붓끝이 좋았다. 첨예한 붓을 들어 그만큼 상대를 파고들어야만 선미에 실린 깃발이 부끄럽지 않겠다 싶었다. 어부의 출항은 만선의 꿈에 부풀었을 터였고, 새벽 이른 잠에서 깬 나는 펄떡이는 말들을 가슴에 담는 것으로 만선의 깃발을 높이 매다는 거였다. 노랗고 빨간 들꽃을 꺾어 구색을 맞추고 가시 무서운 찔레꽃 한 가지도 꺾어다가 향긋한 아침을 묶고 싶었다. 고양이 세수 민망해도 흩어진 마음 한 곳에 모아 예쁜 아침을 선물하고 싶었나 보다. 아침이면 어여쁜 님 머리맡에 온갖 들꽃들 불러 모아

"잘 잤나요? 아침이 향긋한 오늘이에요!"

인사를 나누고 싶은, 그래서 늘 붓끝은 뾰족하게 다듬어져야만 했다. 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고 연장들이 삐죽 불만에 싸였다.

새벽이면 다시 처음을 연다. 딸꾹딸꾹 횡격막이 놀라 자지러지고, 때때로 얼굴 붉혀가며 말을 더듬게 되는 처음 그때처럼 나는 그대의 아침에 작은 미소였으면 한다. 그래서 시작은 늘 밤잠을 설치는 설렘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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