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였으나 바람이 불어 흔들어놓았다 말을 하듯 바람은 고요함을 놔두지 않는다. 바다에서 시작되는 바람은 물결을 만들었다. 찰랑찰랑 물결이 이는가 싶다가도 어느 한순간이면 집채만 한 파도를 만들어 바다를 흔들고야 만다. 풍랑이다. 바다를 떠도는 것들을 작은 포구로 몰아붙이고는 잔뜩 으름장을 놓는다. 작은 섬쯤이야 한 순간에 쓸어 갈 것처럼 파도가 달려들고, 고막이 찢어질 듯 거친 소리로 위협을 한다. 나오지 마라! 방파제에 숨어 한껏 몸을 낮추라 했다. 섬 밖으로는 단 한 발짝 걸음을 내놓지 마라 난리를 쳤지만 정작 바람은 머물지 않았다. 바다를 떠돌았고 고산준령을 넘어 초원을 질주했다. 하룻길에 천 리를 간다는 적토마의 갈기를 흔드는 건 정작 바람이었다.
멈추지 않는 그 성깔머리가 어찌나 고약했던지 멀쩡한 고층건물의 허리쯤에는 싹둑 베어낸 듯이 패인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풍혈風穴이다. 마천루가 밀집한 빌딩숲에는 어지간한 건물이면 풍혈을 둔다. 바람길을 가로막는 빌딩이 눈에 고울 리 없으니 온갖 패악질을 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멀쩡히 주차되었던 자동차를 뒤집어 패대기를 치고, 얌전히 질주하는 버스를 자빠뜨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돌풍으로 돌변한 바람은 말릴 수가 없다. 그래서 바람이 고요하길 비는 성황당처럼 구멍 하나를 떡하니 빌딩 허리에 팠다.
애초에 머물러 고요하기를 포기한 바람이다. 막아서고 가두어 얌전한 놈이 아니었으니 오히려 길을 내어주고, 머물러 썩지 않음을 칭찬하고 다독여주는 게 맞을 터였다.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길은 있다. 바람이라도 그렇고 물이라도 마찬가지다. 물길을 막아 가두었을 때 물은 고여 썩는다. 숨구멍 같은 작은 흐름조차 두지 않으면 그렇다. 세상만물은 스스로 그러하려 한다. 그래서 자연이다.
바람風은 바람이라는 명사이기도 하고 분다고 하는 동사의 뜻으로 같이 쓰이는 말이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명사로써의 사랑에다가 하다라고 하는 동사가 결합해 사랑해라는 말로 완성되는 이중적 구조의 말이다. 바람은 그래서 부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멈추지 않고 불어 가는 게 바람이다. 마음이 몰려 유행이 되는 것도 그래서 무슨무슨 풍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어나 한쪽으로 불어 가는 모든 것은 그래서 바람이고 풍이다.
사진 한 장을 담았다. 하얀 화분에 초록의 이파리 가득했다. 바람을 담으려 했으니 이파리는 정신없이 흔들려야만 했다. 석 달 열흘 감지 않은 떡 진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람에 머리를 감아야만 했다. 그렇게 그럴싸한 사진을 건지려면 태풍이라도 불어야 했지만, 문제는 방구석에 앉아 바람을 담겠다는 데 있었다. 바람은 없다. 없던 바람이 미친 듯이 불 일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러면 없는 바람을 대신해 내가 미치면 된다. 참 간단명료한 해결책이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 찰나의 흔들림이 필요했다. 몇 번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모여 만들어졌던 형체가 낱낱이 흩어져 바람으로 불었다. 결국 형체라는 것도 모였던 바람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예전 사람들은 커다란 새의 날개 끝에서 만들어지는 게 바람이라고 생각했단다. 여기서 새는 봉황이다. 신화 속의 신성한 동물인 봉황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그래서 바람風이란 글자의 시작이란다. 봉황의 날개에서 시작된 바람을 가슴에 담고 싶었다는 얘기다. 맘에 드는 사진을 담으려는 몸짓도 결국은 어느 한 곳으로 몰려가는 바람인 거다. 머물러 썩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하고, 변화하는 나를 꿈꾸는 일이기도 했다. 조금씩 그렇지만 멈추지 않는 날마다를 짝짓는 바람인 거다.
바람이 불었다. 사랑해처럼 짝을 지어 완성되는 말들이 곱다. 너 당산역 계단을 나풀나풀 내려오던 날에도, 개개비 시끄럽게 울던 연못가에도 바람 한 줄기 불었다. 연잎이 한 곳으로 몰려가 눕고 개구리는 퐁당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풍덩 네게로 뛰어들었다. 내 마음이 네게로 몰려가는 바람이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