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천둥소리로 왔다

by 이봄


우악스러운 사내놈들 몇몇이 패거리를 지어 몰려다녔다. 퉤퉤 길바닥에 침을 뱉고 째진 독사눈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멱살잡이라도 할 판이다. 기세등등한 꼴이 어디서 완장이라도 하나 주워 팔뚝에 찬 모양이었지만, 그래봐야 마름 놈의 기세일 뿐이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잠시 잠깐의 호시절에 불과했다. 끌끌 혀를 차고 어디 마음껏 날뛰어 봐라 하면 그만이다. 대거리를 해 얼굴을 붉힐 이유가 없었다. 날개를 파닥거린다고 누가 메뚜기를 봉황이라 할까. 그러려니 하는 게 상책이었다.

여름의 등장이 대단했다. 며칠 날씨가 끄물끄물 종잡을 수 없더니만 품에 숨겼던 발톱을 드러냈다. 기선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잔뜩 날을 세운 칼을 휘둘렀다. 칼은 차갑고 날카로웠던지 푸른 광채가 사방에 튀었다. 번쩍거렸다. 바위를 내려치고 허공을 가를 때마다 푸른 광채가 십 리를 훤하게 밝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저녁 밥상을 물리고 느긋하게 동네 골목을 어슬렁대던 남자는 봉변을 피할 수가 없었다. 고막이 찢어질 듯 천둥이 울었다. 그보다 먼저 번개가 번쩍였었나 따질 겨를도 없었다. 번개가 밤하늘을 가르고 천둥이 그 뒤를 따랐다. 멀찍이 떨어져 쫄래쫄래 뒤따르던 졸개들이 후둑후둑 쏴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한갓진 산책길에 만난 봉변이었다. 전후좌우 살필 겨를도 없이 냅다 뛰었다.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보는 거였다. 추녀 밑이라도 기웃거려야 그나마 물에 빠진 생쥐꼴을 면하게 될 터였다. 허둥지둥 우왕좌왕 사람들 꼴이 우스꽝스러웠는지 험악하게 울던 천둥이 껄껄 웃었다.

멜랑꼴리, 센티멘털, 싱숭생숭.... 온갖 말들이 기어 나와 날궂이를 한다. 심장은 거나하게 취해 주정을 부렸다. 콩닥콩닥 두근두근 그러다가 먹먹해서 아렸다. 요란스럽게 내리는 빗소리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지나가는 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이마를 맞댄 이웃집도 오늘은 이른 잠이라도 청했는지 조용했다. 아니다. 대판 부부싸움으로 악다구니를 쓴다고 해도 뇌성벽력의 요란함에 묻혔는지도 모른다. 메뚜기의 시끄러운 한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도 그랬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준비된 것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은 하나같이 넋을 놓게 하거나 정신머리 없이 돌아치게 만들었다. 멀쩡하던 눈과 귀를 한 순간 멍하게 만들기도 했다. 들리지도 않았다. 어른어른 스쳐가는 것에 초점을 맞출 생각 자체를 빼앗았다. 번개는 날카롭게 하늘을 베었지만, 그날 정신을 혼미하게 한 것은 둔탁한 타격이었다. 아, 세상에나....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에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머릿속이며 가슴속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었다. 요란한 밤이었다. 어떻게 새벽이 왔는지, 오기는 했는지.... 허둥지둥 소나기를 피할 추녀도 찾지 못해 속옷까지 다 적시고 말았다. 느닷없는 소낙비에 흠씬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날 남자는 웃고 있었다. 얼빠진 놈이 따로 없었다.

천둥소리에 놀란 국화가 서둘러 꽃을 피우고, 부쩍 외로워진 남녀는 짝을 찾아 분주해지듯, 그대 천둥소리로 오던 날에 날뛰기 시작한 심장은 여전하고, 오늘도 그 밤처럼 천둥번개가 요란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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