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여름으로 들어선 날씨는 생각보다 뜨거웠다. 그늘에 기댈 수 있다면 모를까 한낮의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면 이미 복더위나 다르지 않았다. 뜨거운 햇살에 곡식들은 한 뼘씩 키를 키웠고, 잔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세운 지지대를 타고 바삐 기어오르던 오이는 바람에 이파리를 너풀거렸다. 여름의 시작이었고, 더위의 시작이었다. 계절은 저 먼저 알고 꼼꼼히 품에 품은 것들을 풀어놓았다.
남자가 강변을 찾은 건 늦은 오후였다. 한낮의 열기가 제풀에 지쳐 쉬어갈 무렵이었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가 울창하게 잎을 키웠다. 수면에 닿을락 말락 늘어진 가지는 불어 가는 바람에 낭창거렸다. 강바람은 시원했다. 잔뜩 들러붙은 초록의 냄새가 향긋했다. 말없이 찰랑대는 수면을 바라보던 남자는 무슨 생각이라도 떠올렸는지 이내 허리를 숙여 강변의 조약돌들을 뒤적거렸다. 아기 손바닥 만한 돌들을 골라 만지작대다가 내려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과 씨름을 하더니만 손바닥에 골라잡은 넓적한 돌 몇 개를 올려놓았다.
남자의 손을 떠난 돌은 가볍고 경쾌하게 날았다. 허리를 잔뜩 숙여 수면과 수평을 맞추던 남자는 방금 전까지 만지작대던 넓적한 돌을 힘껏 던졌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던져진 돌은 팽이처럼 돌며 수면 위를 낮게 날다가 수면에 닿는 순간 다시 허공으로 튕겨져 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몇 번을 수면에 닿았다가 다시 튕겨졌다. 하나, 둘, 셋.... 어린 시절 동네 꼬마들과 수도 없이 놀았던 물수제비였다.
"철수 니는 나한테는 안 되는기라. 다른 건 몰라도 물수제비만큼 내가 최곤 기라"
말마따나 한 번도 물수제비 내기에서 녀석을 이겨본 기억이 없었다.
해 질 무렵 강가를 찾은 손님은 비단 남자만이 아니었다. 왜가리 한 마리가 얕은 물가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잿빛 깃털이 멋진 녀석이었다.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깃털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나풀거렸다. 훤칠하게 키가 큰 새였다. 껑충하게 긴 다리로 물소리를 죽여가며 걷다가 물고기를 잡았다. 죽마에 올라타고 수면을 걷는 것만 같았다. 물끄러미 왜가리의 사냥을 바라보다가 툭툭 손바닥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초록으로 짙던 강물은 검붉은 노을이 고스란히 내려앉고 있었다. 병풍처럼 드리워진 야트막한 능선은 벌써 먹빛이다. 스멀스멀 능선을 타고 어둠이 내렸다. 멀리 바라보이는 강 건너 마을엔 하나 둘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조용한 강변엔 깊은 침묵이 강물처럼 흘렀다. 동글동글 뜬 물수제비에 얼굴 하나씩 떠올랐다 사라졌다. 어렸을 적 동무들이 있었고, 코를 움켜쥐고는 '팽하고 풀라니까!' 하며 소리치시던 어머니도 있었다. 등짝이 따끔거렸다. 젖은 손바닥으로 등짝을 내리치면 짝 하고 소리가 났다.
"철수야? 그만 놀고 밥 먹자!"
"네, 엄니!"
사내는 무심결에 대답을 하려다 말고 웃었다. 바람이 몰려가고 있었다.
남자는 가끔 강나루 긴 언덕에 이름 석 자 해처럼 띄워놓았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노을 지는 산마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좋았다. 거기엔 그리운 사람들이 있었고 보고 싶은 얼굴도 달처럼 떴다. 그게 좋아서 어스름 해 질 무렵이면 마루에 걸터앉아 까딱까딱 발장난을 쳤다. 노을이 물들고 어둠이 내리면 마루에 앉은 사내도 덩달아 노을로 졌다. 그리운 것들 속으로 붉게 스며들고 싶었을까. 물수제비 뜨던 날도 노을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