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파랑이야

by 이봄


간단한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어. 본인임을 확인해야 하니 이름과 생년월일은 필수항목이었을 거야. 거기에 더해 이런 질문들이 따라붙더라고.

최종 학력은 어떻게 되나요?

그동안 어떤 일을 하셨나요?

취득한 자격증은 있나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건강상태는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뭐 대충 이런 질문들이었어.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야 그에 걸맞은 처방을 내릴 수 있을 테니 당연한 정보수집이었을 터야. 나의 방문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약국이 있듯 여기도 마찬가지겠지. 그렇지만 기다리는 곳도, 처방전에 명시된 병명도 정교할 수는 없어. 어차피 배가 아프다 말하면 소화제 몇 알이 처방될 테고, 머리가 지끈거린다고 하면 진통제 한 줌이 처방될 터라서 플라세보효과나 기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해. 장님 코끼리 더듬듯 훑고 지나가는 질문이야. 내 삶의 궤적이 질문 몇 개로 다 드러날 수도 없는 거였고,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어떤 내일을 짜 맞출 수가 있겠어.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게 대상자를 구겨 넣는 거야.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게 또한 현실이라는 걸 왜 모르겠어.

질문 몇 개에 대답을 하고, 뭐라 뭐라 떠드는 말을 들었어. 결국은 나는 나의 언어로 나를 이야기했고, 센터의 담당자는 그의 언어로 그의 말을 했을 뿐이야. 다 형식적인 언어였고 몸짓이었을 거야. 짧은 순간이었어.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펼쳐진 풍경은 알록달록 아름답더라고. 나의 하루는 무채색 하늘에 잔뜩 찌푸린 구름이 소나기를 퍼붓겠다 으름장을 놓고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세상은 총천연색 시네마코프였던 거야. 괜찮아. 단지 그랬다는 거야.

온갖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만의 느낌으로 채색을 하는 게 삶이고, 세상이라서 알록달록 울긋불긋할 수밖에는 없어.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그러니 나도 그래야지 할 필요는 없어. 그럴 수도 없는 일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을 나만의 물감으로 채색하면 되는 거야. 그게 내가 살아온 인생이고 앞으로 만들어가는 흔적이기도 해. 지나치는 길가에 흔적 하나씩 남기는 거야. 단단한 옹이여도 좋겠고, 얼쑤 신명 나는 이야기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실망할 것도 없어.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한 게 사는 이야기니까. 무더위의 기세가 자못 당당한 요즘이라서 푸른 물감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싶었어. 파란 파라솔에 머물다 불어 가는 바람은 또 어딘가에 푸른 물감을 뚝뚝 묻히고 나닐 거야. 오늘은 아,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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