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풀을 뜯다

by 이봄


"국지성 집중호우가 예상되므로 해당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외출을 자제하시고...."

경고 문자가 아침을 열고 있었다. 오르락내리락 장마전선은 한반도를 종으로 오르내렸다.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파란 하늘을 보이는가 하면, 느닷없이 장대비를 퍼붓기도 했다. 여름이고 장마라는데 이해 못 할 것도 없으나 문제는 공원의 정자에 앉아 하릴없는 시간을 죽여야만 한다는 데에 있었다. 부뚜막에 발목이 묶인 두꺼비가 눈만 끔뻑대다가 앵~~ 날아오르는 파리를 넙죽 잡아먹는 그런 시간이 문제였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난장을 펼치려던 장돌뱅이 들은 서둘러 펼쳤던 짐을 싸느라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면 넓은 장마당엔 파리만 날릴 게 뻔하기도 했고, 아무리 허름한 물건이라고 해도 날궂이에 내돌릴 수는 없는 거였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날품팔이 들도 공치는 날이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다. 어쩔 수 없었다. 하늘이 하는 일에 딴지를 걸어봐야 소용도 없었다. 목이 다 쉬도록 떠들어봐야 떠든 놈만 목이 쉬는 법이었다.

뚝뚝 빗물이 떨어지는 우산을 접으며 남자가 물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머리가 희뜩희뜩 샌 남자였다. 돌아올 말을 짐작하고 있는 것도 같았고, 반대로 정말 몰라 묻는 것도 같았다. 그의 힘없는 시선에 뭔가 간절함이 묻어났다. 혹시라도 하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간절함 같은 거.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비가 와도 자리에 가 계셔야 해요. 아셨죠?"

여자의 대답은 간결했고 단호했다. 남자의 허탈한 미소가 빗물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 저예요. 죄송해요. 근데 저는 도저히 더는 못살겠어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시집간 딸이 친정 마당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옷가지 몇 개를 둘둘 말아 보자기에 싸서 들고는 딸은 돌아왔다. 난봉꾼 사내를 믿고 더는 살 수 없었다. 계집질로 밤을 지새우고 돌아와서는 급기야 손지검까지 서슴지 않았다. 딸은 차라리 친정에 돌아가 혀를 깨물면 깨물었지, 더는 사내와 한 집에서 살 수 없다고 다짐했던 차였다.

몇 해만에 보는 딸인지 몰랐다. 버선발로 뛰어나가 얼싸안아주고 싶은 딸이었다. 그렇지만 어미는 딸의 얼굴조차 보려 하지 않았다. 가슴엔 황톳물이 철썩이며 흘렀지만 딸을 외면하고 앉아 외마디 말만 되풀이했다.

"시집을 갔으니 너는 그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니 죽으려거든 시집에 돌아가 죽으려무나!"

요즘 같아선 개 풀 뜯어먹는 소리겠지만 두 여인은 마당과 마루에 앉아 억장 무너지게 울었다.

늙수구레한 사내의 질문과 대답이 다르지 않았다. 일을 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 나가 자리를 지키란다. 죽어도 현장을 지키다 장렬하게 죽으란다. 그게 너의 의무이고 권리라고 떠드는 것만 같아 씁쓸했다. 개가 풀을 뜯고 호랑이가 날고기를 마다하는 날들이다. 장대비 바가지로 퍼붓는데 달랑 집게 하나 들고서 공원을 지키고, 어느 거리를 보안등처럼 서성이는 것, 채식주의자가 넘쳐나고 있었다.

아, 젠장.... 하루에도 몇 번씩 낯빛을 바꾸는 건 하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해가 떴다가 이내 비구름이 몰려들었다. 사내와 센터 직원의 대화를 듣다가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늘이나 사람이나 하루에도 몇 번 낯빛을 바꾸는 건 예사였다. 장마가 들면 가뜩이나 밴댕이 소갈딱지는 번갯불에 콩을 볶았다. 나도 그만 먹구름 난장을 치는 하늘가에 포르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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