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다면 의미도 없다

by 이봄

어떻게 바람 한 점이 없을 수 있냐며 타박의 말을 쏟아내려던 참이었다. 택시 승강장으로 미끄러지듯 택시가 들어와 멈춰 섰고, 이내 젊은 남녀가 내렸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택시의 문을 닫았다. 계단 앞에 서서 남녀는 투닥거렸다. 투닥투닥 날궂이를 앞둔 시간에 남녀가 먼저 투닥거렸다. 여자는 남자의 손목을 잡아끌었고 남자는 거칠게 손을 뿌리치고 있었다. 오고 가는 말투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층까지 이어진 계단의 끝에는 이별을 부추기는 역사가 험상궂은 얼굴로 젊은 남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게 벌린 아가리가 오늘따라 더욱 사나워 보였다.

"지금 계단을 오르는 순간 우린 끝이야!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말아요"

애원과 협박이 공존하고 있었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듯한 얼굴로 다시는 보지 않겠다며 날 선 말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남자의 손을 붙잡으려 했고 남자는 그럴수록 뒷걸음질 치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런 수긍도, 변명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서 잡으려는 여자의 손만 거칠게 뿌리쳤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을 만큼 질려버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할 말이 없으니 오히려 무리수를 둬 궁색한 현실을 모면하려는 얄팍함일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끝끝내 붙잡으려는 여자의 손을 뿌리치고 계단 둘셋을 한꺼번에 뛰어올라 사라졌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까. 뛰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남자를 집어삼킨 어두운 출입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여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이별의 뒷모습은 어쩌면 저렇게 천편일률적으로 쓸쓸한지 모르겠다.

공원을 한 바퀴 휘돌다 보면 날마다 새로운 것들과 마주친다. 저마다의 사연 하나씩 매달고 다니다가 툭하고 떨궈버린 것들이 담배꽁초처럼 나뒹굴게 마련이기도 하고, 어쩌면 새로운 것들을 찾아 헤매는 마음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각자 다른 낯빛으로 산다고는 해도 어차피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닮음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게 공감하게 되는 마음은 모르는 그들의 사연 하나가 어느새 내 것이 되어 동화되는 일, 그래서 기억되고 뇌리에 남는 탓이리라.

파란 비닐봉지에 집게로 주워 담는 꽁초처럼 몰래 엿보고 주머니에 찔러 넣게 되는 이야기들이 날마다 하나씩 손짓을 한다. 새벽에 일어나 붓을 들어 낱말 하나를 끄적인다. 오늘은 어떤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을 해 본다만 말 그대로 뜬구름 같은 일이다. 몇 시간 뒤에 벌어질 일을 미리 예견하고 붓을 든다면 돗자리 하나 근사하게 깔일이지 공원 벤치에서 시간을 죽일까. 그래도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찬물을 챙기고, 커피도 보온병에 담아 챙기듯 말 하나 챙겨야만 하루가 지루하지 않을 터라서, 최대한 두리뭉실 애매모호한 낱말을 챙기게 된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꿰면 코걸이가 되는 말을 고르고 쓰는 이유다. 오늘은 그런 범주에서 벗어난 말을 쓰고 챙겼다.

"너 없다면 의미 없어라"

마치 이별하는 연인을 마주칠 걸 미리 안 거처럼 너 없다면 의미 없어라'라고 글을 썼고, 약속이라도 한 듯 택시에서 내린 연인은 투닥투닥 이별을 했다. 여자는 붙잡았고 남자는 뿌리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날아올라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겨진 여자만 쓸쓸하고 슬픈 영화 한 편을 완성했다. 비련의 주인공은 늘 가냘프고 세상 둘도 없이 아름답기 마련이었는데,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거기에 있었다. 그냥 뒷모습만 볼 것을 뭣 하자고 얼굴을 보았을까. 슬픈 영화 한 편이 아쉽게 막을 내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체온 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