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없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한 번씩 불어 가는 것도 바람이라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닌 바람이 머물다 가는 날이다. 대신 있는 것도 그만큼 많다. 옅은 회색구름이 하늘을 반쯤 메우고 있다. 반을 메웠으니 반쪽은 파란 하늘이 열려있다는 말이다. 멀리 보이는 하늘은 희뿌옇게 가라앉았다. 빌딩숲이며 산자락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런 날은 오히려 공기의 순환도 없고 내리쬔 햇살은 흩어지지 못해 오히려 덥다. 온실효과가 극대화되는 날이다. 공기의 순환이 순조롭지 못하니 바람도 없다. 탁 트인 시야도 없고 맑은 하늘도 없다. 뿌옇게 부서지는 햇살과 솜이불처럼 내려앉은 구름이 있다. 후덥지근 들러붙는 습기가 있고 벌겋게 달아오르는 불쾌지수가 남는다.
아랫녘에는 오늘내일 많은 비가 올 거라 했다. 오르락내리락 비를 뿌리다 며칠씩 숨 고르기로 폭염을 선물하는 게 장마라고는 하지만 이런 날씨는 숨이 막힌다. 사람의 마음도 시들시들 풀을 죽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뜨고 구름이 낀다. 날씨를 고스란히 빼다 박는다. 그늘에 앉아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편 가르기 하다 그만두었다. 비등비등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야 이야기가 될 터인데 손금을 들여다보듯 너무도 명약관화한 탓에 재미가 없다. 있는 것이라고 해 봐야 열 손가락을 다 접지도 못했다. 궁색하게 머리를 굴리고 그래도 이 정도면 뭐?' 하는 식으로 가산점을 주어도 도무지 달라지는 게 없다. 너무도 일방적이어서 입맛만 씁쓸해졌다. 달랑달랑 뭐 두 쪽이 전부다. 그나마 그것도 시원치 않다. 보따리로 한 보따리씩 약을 챙기는 몸뚱이야 골골 시원치 않은 것 투성이라서 어디 내놓기도 부끄럽다.
"동태찌개도 한 번 드셔보세요?"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있는 냄비를 내려놓으며 형수가 말을 했다. 시골에서 따 온 고추를 넣었더니 꽤나 얼큰하니 맛이 괜찮다고 했다.
"한여름에 웬 동태찌개예요? 동태는 겨울이 제맛인데...."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손은 벌써 찌개그릇에 숟가락을 가져가고 있었다. 말처럼 얼큰하고 시원했다. 맛있는 매운맛이었다. 송골송골 땀이 맺혀도 자꾸만 숟가락을 얹게 되는 맛이 이런 거였다.
"형이 퇴근하면서 먹고 싶다고 해서 부랴부랴 장을 봐다가 끓였어요"
아, 그랬구나 생각했다. 먹고 싶은 것도 있고 그걸 말하면 이렇게 끓여주기도 하는 거구나 생각했다. 잊고 사는 것 중 하나가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 철마다 생각나는 것들이 왜 없을까? 주룩주룩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도 어김없이 기름에 부쳐내는 지지미가 생각나게 마련인데.... 들어줄 귀가 있어야 말하는 입도 있다. 바람벽에 대고
"있잖아? 나 오늘 동태찌개가 먹고 싶어?"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입을 다물게 되고 생각을 지우게 된다. 조물조물 싱싱한 재료를 손질하고 보글보글 끓여낼 내가 아니라서 될 수 있으면 생각을 지우는 게 좋다. 그깟 음식이야 참으면 그만이니까 어려울 것도 없다.
그늘에 앉아 바라본 거리가 알록달록 화려하기도 하다. 잘 먹고 잘 사는 걸 도와준다고 목청을 높인다. 보통은 삶을 지켜준다는 보험 몇몇을 들고 몸에 탈이 나면 참 튼튼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목숨이 길어진 현대사회의 필요충분조건이겠다. 행복한 삶도 알록달록 물든 간판에 숨어있었다. 보물 찾기에 늘 잼병이 인 내가 문제다. 저렇게 숨겨진 보물이 넘쳐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