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고 밤바다를 배회하는 녀석들이 있다. 반쪽의 잠, 가수면상태로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만 심해로 빠져드는 걸 막을 수 있는 상어가 그중 하나다. 선택의 여지가 몇 되지 않는다. 얕은 바다로 나와 잠을 청한다거나 끝도 없는 유영을 한다거나의 선택이 고작이다. 깊은 바다에서의 숙면은 죽음을 의미한다. 슬프게도 상어는 부레가 없다. 강요된 부지런함은 그래서 그들의 숙명이다. 끝없는 유영만이 목숨을 담보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호흡하지 못하는 다랑어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나아가며 아가미에 물을 밀어 넣어야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다랑어는 그래서 평생을 두고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달빛 고요한 밤에도 고요하지 못한 바다가 일렁이는 이유다.
타는 듯 붉게 물든 단풍에 계절이 깊다. 낙엽을 거부하며 가지에 매달려 발버둥 칠 수도 없다. 짙어지고 깊어지는 건 그래서 상어의 유영과 다르지 않다. 숙명이고 이미 새겨진 운명이다. 거부할 수 없다면 오히려 더욱 짙어 몸서리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목덜미를 타고 번져가는 소름처럼 찌릿한 떨림이면 더욱 좋을 테고....
무릇, 진저리 나게 좋은 건 점점 빠져들어 붉게 타오르다 한 줌의 재로 남는 것이다. 계절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다. 뻔히 재 됨을 안다고 해도 기껍게 성냥을 긋는 거라면 이 계절이 기쁠 터다. 그게 무엇이 됐든 온 마음을 빼앗겨 미소 짓는 무엇이라면 늪이고 수렁일지 모른다. 다만, 달아나고 피하려 발버둥 치는 늪이 아니라 오히려 반가워 몸서리치는 늪이다. 붉게 타오르다 마침내 한 줌 재 되는 불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