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랑살랑 꼬리를 쳐대는 꼴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봐주지도 않는데 오매불망 혼자만 신나서 살랑거렸다. 그러는 동안 묶어두었다 믿었던 세월은 고삐가 풀려 천방지축 날뛰고 말았다. 번지르 윤기가 나도록 흔들던 꼬리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추레하다. 퇴색되고 거칠어진 몸짓만 서글픈데, 아랑곳하지 않는 가을볕이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누가 세월 앞에서 감히 당당할까 싶다가도 지붕 위로 달아난 닭만 바라봐야 하는 꼴이 어쩐지 청승맞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흰구름 하나 가을하늘에 동동 희망처럼 띄워놓고서, 세월아 네월아 청춘만 늙었구나 생각하면 허망하다. 눈치도 없이 목놓아 부른 노래가 울림 없이 잦아들었다. 힐끔힐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만 한다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의 눈치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허세를 떨 수도 없다. 막무가내로 목청을 높일 세월도 이미 아스라이 멀어졌다.
"왕자님의 큰 칼이 햇살에 번쩍였을 때 불을 뿜어내던 용은 마침내 목을 떨궜다"
그 후로 어여쁜 공주님을 아내로 맞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는 동화책에 나오는 단골손님일 뿐이다. 하긴, 동화책 한 권 옆에 끼고서 호호 깔깔 행복한 사람들도 많다. 잔뜩 녹이 슨 칼 하나 허리춤에 차고서 늙은 로시난테를 찾는 돈키호테가 있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