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지듯

by 이봄


고갯마루에 올라 바라본 마을은 함지박 우묵한 모습이었다. 개울을 따라 논 밭이 올망졸망 자리하고 있었고, 비탈밭 어귀에 띄엄띄엄 들어선 농가가 한가로웠다.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억새꽃이 눈발처럼 흩날렸다.

바싹 마른 낙엽이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목줄을 벗고 몰려다니는 동네 개들과 한 데 뒤섞여 종일 겅중거렸다. 걸음마를 막 끝낸 아이들도 덩달아 뛰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을 아이들이 뛰었고 컹컹 개들이 꼬리를 흔들었다. 바싹 마른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뒤를 쫓았다. 까북까북 졸던 마을이 화들짝 놀라 소란스러웠다.

이른 가을부터 골짜기엔 매캐한 연기가 여기저기 피어올랐다. 물길을 따라 자란 오리나무 커다란 숲에도 하얗게 풀어헤친 연기가 피어났고, 산비탈을 따라 우거진 다래덤불 속에도 마찬가지였다. 성미 급한 들꽃 몇몇과 나뭇잎이 떨어졌다. 뜨겁던 여름과 여름처럼 뜨겁던 꽃송이가 떨어졌다. 여름 내내 가지 끝에 매달려 푸른 불꽃으로 피었었을 이파리가 마침내 툭 하고 낙엽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흰 연기 한 가닥 실처럼 풀어놓고, 툭 불꽃 꺼지는 게 낙화였고 낙엽이었다. 끝은 언제나 쓸쓸하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낙엽 타는 냄새엔 한 줌 꽃향기가 묻어났고, 여름날의 푸르름이 스며있었다. 뜨겁게 피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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