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채색하는 세상

by 이봄


같은 세상을 살아도 모두 같은 세상을 보는 건 아니다. 벌은 가시광선을 벗어난 자외선 영역을 본다고 하고, 대다수의 동물은 총천연색이 아닌 흑백의 세상을 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꽃 한 송이를 보아도 같은 꽃이 아니라는 얘기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영역을 극대화시켜 생존능력을 키우는 거다. 생존에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거나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과감하게 배제하는 취사선택의 결과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선택한 세상의 모습도 그 범주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거기에 더해 마음의 눈으로 인식하는 세상 하나가 더 존재하는 것, 그것이 사람의 세상과 동물들의 그것을 구별하는 잣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때 우리도 흑백의 세상을 산 적이 있다. 권투경기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흠씬 두들겨 맞아 코피를 뚝뚝 흘리던 선수의 코에서는 붉은 피가 아닌 회색 코피가 흘렀었다. 선혈이 낭자한 전쟁영화에서도 피는 늘 잿빛 피였다. 흑백텔레비전이 만든 세상은 말 그대로 흑과 백, 두 가지의 색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흑백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붉은 피를 보았다. 상상의 영역이 오버랩되면 눈으로 흑백을 받아들여 머릿속에서는 총천연색 그림을 완성하는 식이었다. 눈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을 더해 보정해야 완성되는 세상을 우리는 본다. 일상의 영역도 그러할진대 마음 울렁거리는 영역이라면 말을 보태봐야 입만 아프다.

함께 채색해 가는 풍경이 좋았다. 너 좋아하는 보라색 꽃잎에다 연초록 풀잎을 더하는 것처럼, 함께해야 향기로운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추억이 될 터다. 함께라는 말은 그래서 곱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 둘이 되는 게 아니라 셋 되고 넷 되는 건 함께가 만드는 세상이다. 흑백사진에 마음으로 물들이는 천연색처럼 우리라는 말과 함께라는 말의 색을 더한다면 노을은 더욱 찬란할 터다. 이왕 바라보는 세상이라면 달콤 쌉싸름한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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