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포를 날리듯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다가 남의 다리를 긁는다고 달이 떠올랐고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날짜를 더듬거렸다. 도무지 이날이야 하는 날은 생각나지 않았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어쩌다 생뚱맞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게 달이구나 하고야 만다. 마치 그런 거다. 코피 터지게 싸움박질하던 녀석의 안부가 궁금한 거. 유년의 기억을 같이한다고 해서 꼭 보고 싶은 친구는 아니다. 어쩌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꼴 보기 싫은 놈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스러지는 생각이 있고 사람도 있다.
바라는 것 없는 삶이라서 그랬을까. 안타깝고 시린 것들 없어서 그랬을까. 달은 멀리 있었고 밤은 짧아 금방이었다. 열린 창으로 목을 길게 빼고서야 겨우, 겨우 손바닥만 한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손바닥 위에 뜨는 달은 그만큼 귀했다. 우연히 창가를 서성이다가 마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날을 잡고 마음을 다져야만 했다. 귀함이 커질수록 오히려 흔해빠진 돌덩이 바라보듯 심드렁하게 잊히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지워 외면하게 된다.
밤이 이슥하도록 뒷마당을 떠나지 못했다. 한 번 나선 걸음은 밤을 꼬박 지새우고서도 돌이킬 길이 없을 터였다. 오매불망 해 뜨고 달 떠도 잊지 못하는 것들 발목을 잡는데 매정하게 돌아설 수는 없었다.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서성일 게 뻔했다. 그래서 달은 멀리 있어야만 했고 초저녁 이른 시간에 곯아떨어져야만 했다.
그 옛날 아낙네들은 마음자리 뒤숭숭할 때마다 정화수 곱게 떠놓고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었다 했다. 곁에 선 남정네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연신 담배만 피워 물었다. 밤새 새까맣게 애만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