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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Dec 15. 2023

날마다 희곡을 써


조명 꺼진 객석에 앉아 박수를 쳤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쓸쓸하게 울려 퍼졌다. 쥐 죽은 듯 고요했다. 허리를 깊이 꺾은 배우가 어둠 속에서 무대인사를 했다. 객석을 채운 관객도, 무대 위에 선 배우도 1인 2역의 내가 전부였다.

그림 하나 없는 공연 포스터엔 이렇게 적어두었다.

"그대 보시어요!"

굵은 서체로 헤드라인 한 줄이 있었고 부제가 작고 얇게 자리하고 있었다.

"오직 그대만을 위한 모노드라마, 사랑!"

객석에 오직 그대만을 초대하는 연극이었지만, 하루라도 공연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날마다 대본을 써야만 했다. 초대받은 관객은 때로 자리를 비우고, 아예 극장을 찾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연은 멈출 수가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희곡을 썼고 대사를 외웠다. 주고받는 대사가 없었으므로 외워야 하는 대사는 그만큼 많고 길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감 놓고 배 놓고, 혼자 난리법석을 떨었다. 무대에서 춤을 추다 말고 객석으로 뛰어내려 가 짐짓 모른 척 턱을 괴고 앉았다. 박수를 쳐야만 했고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지켜보면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겠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였으므로 숨지도 않았다. 통하면 불같은 사랑이라 좋을 터였고, 외사랑 애틋한 마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끌끌 혀를 차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몽글거리는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달콤하고 황홀한 거였다.

펜을 들어 편지를 쓰고 목청 돋워 세레나데를 흥얼거리는 건 누가 뭐래도 행복한 일이었다. 손가락이 얼얼하도록 이야기 한 편을 쓰고 침을 묻혀가며 가다듬는 시간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즐거웠다. 자다가도 좋은 글귀 하나 떠오르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펜을 잡았다.

날마다 희곡 한 편을 썼다. 주인공도, 이야기도 변하지 않는 연극이었고, 대사마저도 독백이 전부였다. 자리를 오가며 주거니 받거니 혼자 떠들어야만 했고, 무대와 객석을 오르내려야만 했다. 날마다 어여쁜 그대에게 바치는 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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