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선 갓길 위로
회사를 다니며 하루에 만보를 채우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러닝머신에서 팔을 흔들며 걷는 것까지 포함한다면야 쉽게 넘길 수 있겠지만, 아침운동은 운동이고 걷기는 걷기다. 회사를 오고 가는데 4천보, 점심때 빨빨대며 돌아다니는 게 3천보, 집 도착까지 두 정거장 먼저 내려 걷는 게 3천보. 하루의 만보는 대략 이렇게 구성되곤 한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길에 나서보니 앱의 화면에는 4천보를 조금 넘었다고 뜬다. 서비스 오픈 이후로 점심시간에 팔자 좋게 돌아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 앞에서 먼저 내렸지만, 성동교를 다 건너고도 2천보가 붕 떴다. 어떻게 빙 돌아야 만보를 채울 수 있을까, 서울숲까지 쭉 내려가서 걸을까, 아니면 하천을 끼고 크게 돌까. 하늘이 맑은지 야경이 예뻤고, 사람이 없는 길이 걷고 싶은 탓에 하천을 끼기로 했다.
물가의 차가운 바람 탓인지 눈에서 찔끔찔끔 눈물이 났다. 누가 보면 어디서 막 헤어진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보였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찬 바람만 불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짜증 났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 바람이 차가운 탓인지 눈물은 금세 마르고 채 턱 언저리까지 내려오지도 않는다. 슬픔에 흐느끼는 눈물은 턱 끝에 고이고 코 끝에 맺히기 마련이다. 눈물은 질척이고 콧노래는 흥얼대며 발걸음을 옮긴다. 조커가 따로 없다.
보도블록이 쭉 이어져 있을 줄 알았던 길의 끝에는 사람이 걸을 공간이 없었다. 난간 아래쪽으로는 호수라고 하기도 민망한 작은 물웅덩이가 있고, 그 옆으로 중장비와 지금은 쓰이는지 알 수 없는 낡고 낡은 주유소 자리가 있다. 간판이 떨어졌는지 주인을 알 수 없는 주유소의 관리실만이 밝게 불이 켜져 있었다. 사실 그게 관리실인지 화장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느 스산한 영화의 배경이 되어도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 곳이었다. 내가 서있는 곳은 그 주유소로 통하는 긴 1차선 도로와, 널찍하고 길게 뻗은 8차선 도로의 분기점이었다.
갓길을 걷는 것은 약간 무서운 일이다. 특히나 신호등이 없이 쌩쌩 달리는 도로라면 더욱. 하필이면 까만 머리에 까만 코트에 까만 바지라니. 밤에는 운전자에게 까만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덜컥 겁이 나 그깟 만보가 뭐라고 하며 뒤돌아 집에 갈까 했지만, 요즘의 나는 때때로 무모해지곤 한다. 쓸데없이. 그래서 결국 갓길을 걷기 시작했다.
갓길의 옆에는 바로 화단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의 갓길의 절반도 채 안될 만큼 좁았다. 나뭇가지들이 튀어나온 탓에 끝 차선을 자꾸 넘어 밟고는 했다. 차가 무서워 몸을 움츠리면 나뭇가지가 어깨와 옆구리를 툭툭 찔렀고, 나뭇가지를 피해 몸을 기울이면 한껏 속도를 낸 차들과 성큼 가까워졌다. 코너를 돌면 보도블록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길은 오로지 자동차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보도블록의 끝이 대체 왜 이리로 이어져 있는 거야 싶다가도, 자꾸 차가 오는지를 고개를 돌려 확인하는 모습은 괜히 쪼다스러운 것 같아 억지로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무모함을 보이는 게 요즘이다.
금요일 밤 차를 운전하던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위태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 겨울밤에 갓길을 홀로 터벅터벅 걷는 까만 옷차림의 사내. 차선을 바꿔서라도 멀어지고 싶을 것 같았다. 갓길을 걸으면 불법이던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운전자의 입장에서 갓길을 걷는 사람이 불법이든 합법이 든 간에, 그의 비틀거림과 발자국에 긴장하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갓길을 걷는 사람은 차를 무서워하고, 차도를 달리는 운전자는 사람이 무섭다. 이유도 모르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유독 숫자 4가 모인 것들을 자주 보며, 어쩌면 이 길 위에서 쾅, 하고 치여 죽는 게 운명인가 싶은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이게 뭐라더라, 맨날 여러 숫자를 보지만 7이나 4만 신경 쓰고 기억해서 그렇다나. 근데 7이 모여있는 건 거의 볼 일이 없단 말이야. 하고 생각하니 44분은 있어도 77분은 없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시계로나 숫자를 많이 보니까. 엉뚱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뚜벅이는 걸음 덕에 갓길의 끝자락도 코 앞이었다.
찬 바람에 마르는 눈물을 슥, 털어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안 죽었네. 별 거 아닌 갓길을 걷는 일이 새롭기도 하구나. 다시 시작된 보도블록은 땅에서 고작 10센티? 20센티정도 올라와 있을 뿐이었지만, 이내 갓길과는 다른 안도감을 주었다. 일주일 내내 바삐 시달리며 우울하다거나 외롭다거나 하는 일이 문득 바보같이 느껴졌다. 들이마시는 공기는 시원했고, 짙은 밤하늘 아래 도시는 반짝였으며,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일들 뿐이었다. 매일같이 쫓기듯이 일하며, 눈이 터져라 노려보던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졌고 나는 다만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썩 설득력 있지 않았지만, 한적한 겨울 밤거리에는 나쁘지 않았다.
구태여 삶을 반성적으로 살지 않아도 늘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은 갓길 언저리에서 할퀴는 나뭇가지를 꺾고, 피하고, 뒤에서 짓쳐드는 자동차를 염려하며, 그러나 돌아보고 싶은 겁 많은 마음은 외면해가며 앞으로 걷는 마음과 닮았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내게 그토록 간절한 일들이 당연한 일들이고, 누군가는 내게 그토록 특별한 일들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것들이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로 앞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밤에 긴 길을 걷다 보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질 때가 있다. 아득바득 내 인생은 행복해야 한다며 목놓을 필요도 없고, 바득바득 저 인생은 부럽기 그지없어 너 같은 놈이 뭘 아냐고 이를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때때로,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고, 가끔의 안부를 묻고, 때때로 하루에 작은 좋은 일 정도를 할 수 있다면 가끔씩 복잡하게 엉키는 마음쯤이야 이 넓은 길가 어딘가에 조금씩 흘려놓으면 그만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좋은 일은 뭐였더라? 아침에 어떤 할매가 지하철 문이 닫히는데 뛰어들어서는 가방이 반쯤 걸려 문이 닫히지 않은걸 억지로 문을 살짝 밀어 가방을 쏙 빼드린 일 정도면 괜찮겠다. 손은 시꺼메졌고, 할매때문에 문이 안 닫혀서 늦잖아 라고 좀 투덜대긴 했지만 속으로만 했으니까 그 정도는 봐주기로 하자.
배가 고프다. 라면이나 한 그릇 끓여볼까. 차에 치였으면 라면도 못 먹을 뻔했잖아.
다음에는 길을 잘 골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