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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wpw Oct 08. 2019

주말을 보내는 법

휴식을 고르는 일

회사일이 너무 고된 이에게 주말이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에게 주말은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고르기를 늘 망설여야 하는 하루와, 그다음 날을 두려워하는 하루로 이루어져 있었다. 무엇을 해도 주말을 후회 없이 잘 보냈다는 후련함보다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놀아도 논 것 같지 않은, 즐겁고 행복한 기억에 대한 바람은 풍선처럼 컸지만, 그 어떤 것에도 충분히 만족할 수는 없어서 다만 스스로를 위로해야만 했던 시간. 그 시간마저도 조금이라도 훼손될 때면 견디기 어려운 우울함을 끌어안아야 하는 요상한 이틀이었다. 토요일에는 밤이 아쉽고, 일요일에는 아침이 무서운 나머지 월요일이 되고 나면 축 늘어진 체념의 걸음을 옮긴다.


주말을 온전히 휴식의 시간으로 두었을 때, 휴식은 때로는 독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회복이 아니라 지쳐가는 시간과도 같았다. 금요일의 지친 한 주가 마치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또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 없이는 도무지 월요일을 맞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어느 쪽이든, 주말은 퍽 무기력하게 흘러갔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어느 날이었다. 아직 회사일에 적응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날의 금요일에, 문득 약간의 에너지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연소되지 않은 그것을 따라 급하게 약속을 잡았다. 술이 들어가고, 고기를 굽고, 왁자지껄한 시간을 지나, 토요일이 되어서야 집으로 향한다. 풀썩 쓰러져 거나하게 잠들고 나니, 입 안은 매캐한 연기라도 찬 듯 텁텁하고 오줌보는 터질 것 같은 것이 해를 보지 않아도 대충 중천이겠거니 싶었다. 엉금엉금 소변을 보면서, 뒤뚱거리는 몸뚱이에 어이쿠, 하고 오줌발이 타 타탁 튄다. 인상을 찌푸리고 샤워기를 들어 변기를 닦다 이내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허리가 뻐근하고 팔뚝이 시큰한 것이 땀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기왕 청소도 했으니 샤워까지 다 해버리고는 철벅대며 거실로 나오면 비로소 주말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 동안은 그런 주말도 괜찮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흐드러지게 늦잠을 자고, 있는 힘껏 빈둥대고, 돌아오는 월요일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그러다 문득, 이런 주말이 무척 익숙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저 버티기 위한 시간이야. 나는 그러나 버티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이제까지 버티는 일은 충분히 오래, 많이 했다. 나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주말을 원했다. 그 주에, 아무 약속도 없이 금요일 밤의 가게를 지키며 남은 에너지를 노동에 쏟았다. 짜증은 났지만, 술과 고기 없이도 토요일은 무사히 돌아왔다. 그것이 답은 아니었지만, 숙취에 쓰린 속을 달래는 대낮의 토요일보다는 낫다는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 공부를 시작한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다. 점심에 근처의 맛있는 밥집에서 밥을 사 먹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두어 판 하다가 공부가 하고 싶어 졌다. 헛웃음이 나올 일이었다. 그러나 명백히, 공부가 하고 싶어 진 것이다. 이렇게 황당할 데가. 생각에 생각을 더해도 게임은 지루했고, 결국 집에 와 책을 펼치고야 말았다. 한 서너 시간쯤 책을 보며 몇 가지 코드를 따라 치고, 오, 이런 거구나 하며 감탄을 하다 보니 토요일이 다 가고 있었다. 놀랍게도,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 뒤에도 주말은 무엇인가로 채워졌다. 어느 날은 빈둥댐으로, 어느 날은 술 냄새와 늦잠으로. 그 사이사이에는 약간의 공부가 끼어들어 있었다. 그 뒤로 주말은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변했다. 더 이상 월요일을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월요일이 기대되기까지 하였다. 주말의 일부는 월요일에 또 새로운 것을 마주하는 준비의 시간이 되었고, 비로소 '보람 있는 주말'을 보내는 법과 조금 친해졌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이틀 중에 아주 약간의 시간이 평일을 위한 준비로 돌아서자, 비로소 주말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짧은 이틀의 시간이었는데, 그 사이에 무언가를 보거나, 기억할 만한 것을 찾고 싶어 졌다. 그것은 꼭 예술 따위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다만 무엇인가 배우거나 느끼고 싶었다. 그것은 안에도, 밖에도 있었다. 아니, 널리고 널린 것이 새로운 것들이었다. 모르고 생소한 것들이 더 이상 싫지 않았다. 그 짧은 배움의 시간들 덕에, 나머지 휴식이 비로소 즐거움이 되었다. 마냥 쉬어야지, 쉬어야지 하며 그저 기다리기만 하던 시간과는 확연히 다른 밀도였다.



누구에게나 주말은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주말은 부족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에 맞는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남아있는 동안에 선택하는 것들이야말로 그 사람의 삶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남는 시간은 욕심과 조바심이 차오르는 시간이고, 마냥 쉬어가는 시간은 월요일을 더 무섭게 만드는 시간이다. 이걸 받아들이는 데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아마 이래도 좋을 때가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딱, 좋을 때가 된 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아마 어느 순간에는 다시 술이 떡이 되고, 맛있는 것을 찾고, 빈둥대기만을 바라는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주말의 시간을 보람으로 바꾸는 것이 그저 먹고 노는 일로만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걸 배운 것 하나로도 충분히 기쁘다. 아주 당연한 것을, 비로소 느끼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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