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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Sep 08. 2016

부유 인간

낯섦 불감증을 앓고 있습니다


B가 여행을 준비 중이다. 입버릇처럼 '나도 데려가요' 말했더니 떠나고 싶은가요, 하고 물어왔다.

떠나간 곳에서 떠난다는 건 어디를 향하는 걸까요? 그가 덧붙인 뒤에야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떠나고 싶은가?



선뜻 답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시꺼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겨우 웅얼거렸다.


떠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머물고 싶지도 않다.


지금 누리는 일시적인 안정과 익숙함이 좋다. 하지만 종잇장 같은 편안함에 뿌리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미적지근한 대답을 내어놓고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이따금 어딘가를 향해왔지만 실로 떠난 적이 있던가. 흐르는 대로 떠밀렸을 뿐 떠난 적은 없다. 그런 걸 '떠난다'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욕심이 없었다. 물욕이나 승부욕은 물론이요, 의욕마저 미미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무엇도 욕심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뿌리 없는 인간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나에겐 뿌리내릴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내리지 않을 이유가 많았지.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익숙하지 않은 것이 익숙한' 인간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무엇도 낯설지 않았다. 난생처음 딛는 땅, 처음 먹는 음식,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도 새롭지 않았다. 생면부지의 사람과 나누어 쓰는 방 한 자락에 하얀 시트를 둘둘 말고 드러누우면 그것이 나의 집이었다. 익숙지 않은 모든 것에서 한 켜의 이질감도 느끼지 않았다. 언제 어디를 가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저 익숙할 뿐이었다. 나는 이걸 '낯섦 불감증'이라 부르고 있다. 이 증상은 꽤 오랫동안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는데 최근 들어서는 언뜻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환경의 변화에 이토록 무감한 것이 현실감각이 소멸해 버린 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부터다. 그리고 소멸의 이유는 오랫동안 '여행자'인 채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행은 언제나 나를 체계 밖의 이방인으로 남게 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고 어떤 보호막 뒤에 단절된 채 외부인으로서 존재했다. 여행자라는 신분이 주는 투명한 갑옷. 짙은 불안을 퇴색시키는 근거 없는 낙관과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



이것은 나를 지켜주는 걸까,

현실로부터 유리시키는 걸까?


금해 졌다.

 


언젠가는 벗게 될까?

이미 일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다.












큰 굴곡 없는 마음의 평화 속에서 부유하듯 흘러가는 일을 즐거이 하면서도 이따금은 피부로 확연하게 나를 둘러싼 것들을 느끼고 싶다. 아프거나 뜨겁거나 따가워도 내 손으로, 눈으로, 귀로,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 심장이 터질 듯 뛸 때 느껴지는 생의 활력과 기쁨.


'살아있음의 환희'와

'고통스러운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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