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같은 길은 점점 익숙해졌지만 또 매일 새로웠다. 마주치는 것에 말을 건네고 주절주절 인사하고 떠오르는 멜로디를 아무렇게나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목이 아파왔다. 아마도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셔서.
나는 곧 목소리를 잃을지도 모르겠다-,
늦은 오후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선택적 기억력이란 얼마나 간사하고 훌륭한지.
우리는 언제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가 결국은 원하는 것만 기억하고 만다. 나의 기억도 좋을 대로 일그러져 있겠지.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너도 그 모습은 아닐 테지.
네가 보여준 너를 나는 제대로 봤을까.
네가 보여주지 않은 너를 나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너는 어떤 눈으로 웃을까.
저녁의 티타임에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천주교 신자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그는 천국은 믿지만 지옥의 존립은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는 모두 던져진 돌이며, 소중한 시도이니 어떠한 삶도 재단되거나 비판받지 않아야 한다는 거였다. 어떠한 삶이라도 누군가에겐 최선이었으니 그것으로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그러니 천국만이 존재할 거라고, 그곳에서 모든 실패는 용서받을 거라고 했다.
가상의 절대자가 가진 관대함이나 죄의 사해짐에는 관심이 없지만 우리 모두가 소중한 시도라는 말만큼은 인상 깊었다. 마치 당신의 실패와 방황마저도 소중한 오늘입니다, 하고 토닥이는 것 같은. 어쩌면 추운 날을 사는 모두에게는 따뜻한 손, 다정한 말 한마디. 딱 그만큼의 온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따뜻한 위안이 되고 또 어디에선가 위안받기를, 언제가 나 또한 누군가의 위안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