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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ul 23. 2017

익숙한 이별

'언제든지 헤어질 준비'라는 것도, 가능한 가봐요


밤샘 비행을 마치고 공항을 나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한국은 선연한 잿빛이었다. 앙상한 골조를 드러낸 가건물 위로, 드문드문 새벽을 달리는 트럭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시야를 흐렸다. 우중충한 하늘, 습한 공기, 속도를 높이는 버스 창가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칙칙한 풍경에 숨이 막혔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떠나는 일은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만나도 나는 말이 없어서 엄마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부산에 살고 있는 동생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우리 딸들 가까이 살면 좋겠는데-, 결혼도 해야지.


부산은 집과 한 시간 거리. 그것도 멀다는 엄마의 '가까이'는 당신과 함께 사는 일이다. 결혼은 할 생각이 없다고 이미 백번은 말한 것 같은데, 대화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다. 한숨을 꿀꺽 삼키고 '흐응-' 낮은 신음을 뱉는다. 먼 산을 본다. 우리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Kushu, Japan (2017)



어느 날은 할머니 집엘 갔다. 창 너머로 초록의 정원과 작은 정자, 물이 마른 연못 같은 걸 바라보고 섰는데 동네 밖에서부터 큰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생선 트럭이었다. 아직도 트럭에 생선을 싣고 오는 동네. 상상도 못 한 일이라 웃음이 났다. 엄마는 지갑을 들고나가 오징어, 고등어, 갈치, 가자미 따위를 살뜰히도 사 왔다. 엄마가 그걸 데치고 굽는 동안 할머니와 나는 텃밭에 나가 상추를 뜯고, 대파를 고르고, 제법 알이 굵어진 양파도 하나 뽑았다. 할머니는 고랑을 따라 늘어선 풀잎을 가리키며 이건 옥수수, 이건 고추, 이건 깨, 이건 마늘, 이건 땅콩- 했지만 나는 별로 알아보는 게 없다. 이열 종대로 가지런히 싹을 틔운 식물들은 지난봄 할머니의 정성일 거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밭따라 늘어선 과일나무도 저마다 열매를 맺겠지. 앞서 걷는 할머니의 굽은 어깨를 불쑥 껴안고 싶었다.


이것이 엄마의 인생이었겠지. 나에겐 너무도 낯선 이 일이 엄마에겐 익숙하겠지.

그렇게 보면 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이 그렇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닌지도 몰라.






엄마는 힘든 일,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아마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거다. 차라리 온 힘을 다해 숨길 거다. 도움을 받을수록 엄마가 원하는 삶을 외면하기 힘들어질 테니까. 결국은 그게 가장 괴로울 테니까. 부채감과 죄책감은 지금도 충분하니까.


엄마 친구들이 집에 온 날,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방문을 닫고 꼭꼭 숨었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떳떳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못했나 보다. 스물 후반, 평일 낮에,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딸. 그런 내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저는 엄마의 짐이자 걱정이랍니다, 뽐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다 자격지심이겠지만, 엄마의 세계에서 엄마와 비슷한 생각을 할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짐작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나는 내가 부끄럽지 않은데, 엄마 옆에 있으면 자꾸 주눅이 든다. 엄마 딸이라는 프레임 안에 들어가면 나는 당당할 수가 없다. 나는 사회의 기준과 조금 동떨어진 선택을 했고 사실은 부합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하다. 딸아- 딸아, 엄마가 나를 부를 때 나는 비뚤어진 자기혐오에 빠진다.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딸'이 아니라 '나'니까. 나는 엄마의 딸이지만, 딸로서만 살 수는 없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온전한 '딸'의 역할이라면 나는 그럴 수 없다.



Kushu, Japan (2017)



엄마는 떨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엄마를 상처 주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내 삶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딸'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가 없다.


나는 내 멋대로 살 테지만 엄마의 자랑이 되지는 못할 거다. 그 죄책감은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겠지. 엄마는 자주 우리는 가족이잖아, 했지만 그건 내겐 납득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 불가피한 범주는 바란 적 없는 삶, 벗어날 수 없는 허기와 같이 강압적이고 단단한 족쇄였다. 나는 목숨까지도 내어놓는다는 사랑이 두려웠다. 목숨 같은 거 내놓지 마-, 못을 박고서 서운해하는 엄마를 모른 체한다. 연민하지 않는 편이 좋다. 사랑하는 것보다는 미워하는 편이 낫다. 나는 늘 그렇게 치사하고 비겁하다.


나는 떠나야 했다. 떠나지 않길 바라는 엄마의 기대 때문에.






엄마는 문을 열고

나는 닫았다.


밥 먹었니? 물으면 먹었지-

답했고

뭐 좀 먹을래? 하면 아니-

그랬다.


문 밖에서 달그락달그락 티브이를 마주하고 밥 먹는 소리가 들리면 괜히 죄스러웠다.

나는 엄마를 문 밖에 두고 싶었다. 해소할 수 없는 부채감을 그렇게라도 외면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엄마는 문을 열고(문 좀 열어두지 그래?)

나는 닫는다(제발 그만해).


닫힌 문 뒤에서 그것이 그대로 우리의 관계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며칠 전엔 (매우 이례적으로)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나가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 나 나가.


어딜?


그냥-, 여행.


얼마나?


가봐야 알지.


또 비행기표 다 끊어 놓고 이야기하는 거야?


응.


엄마는 너무 담담해서 마음 졸인 내가 다 머쓱해졌다. 엄마가 나를 놓지 않아서,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엄마는 무덤해져 있었다. 조금 기쁜 동시에 서글펐다. 언제나 마지막이길 바라는 엄마의 기대를 무참히 부수지만, 그 잔인함에 무뎌진 엄마를 보는 일은 그것대로 또 착잡했다. 어쩌란 건지, 나도 참-.


돌아오면 뭘 할 건데?


가서 생각해 봐야지.


대책 없는 딸을 이해할 수 없음을 엄마는 납득한 듯했다.


우리 딸들은 왜 이렇게 고집이 세서 말도 안 듣고. 엄마 하라는 대로 살면 좋을 텐데-


남들처럼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장, 적당히 결혼, 가정, 아이-. 엄마가 원하는 삶, 나는 못 살아.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


정 아쉬우면 말 잘 듣는 딸 하나 더 낳아-


퉁명스러운 나는, 부득이 또 부모를 이기는 자식이 된다.  


그래서 언제 가는데?


다음 주.


또 덤덤하게 그래? 하더니 하는 말이



엄마는 언제든지 너랑 헤어질 준비가 되어 있어.



말을 잃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그간 내가 엄마에게 바라 온 건 이해가 아니라 포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80%쯤 포기한 엄마를 마주했다. 그렇게 기다려왔는데 어쩐지 씁쓸했다면 너무 못된 심보일까. 그래도 이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겠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귀국을 미룰 수도 있겠다. 다음을 계획하는 일이 더 쉬워질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새 우리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엄마와 나는 이렇게 익숙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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