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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Jan 23. 2017

DO REMEMBER

기억으로 존재하다_2


사람은 기억되는 일을 좋아한다.


좋아한다, 정도의 단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이 바뀌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점을 만드는 일이다. 아는 얼굴을 만들고, 어딘가에 익숙해지고, 무언가에 자연스러워지는 일. 낯선 곳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생의 굴레를 축조하고 끄덕끄덕 또 하나의 습관으로 흘러가는 일. 시간을 살아내는 일은 기억하는 일인 동시에 기억되는 일이기도 하다.



Cairns, AU (2016)



이 글은 작년(2016) 시월에 시작했다. 카페 일을 시작 한지 한 달이 조금 넘던 때였다. 그 무렵 나는


사소한 무언가로 기억되는 일을 기뻐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일이 손에 익는 동안 자주 오는 얼굴도 눈에 익었다. 자연스레 누군가의 커피도 함께 기억하게 되었다. 커피나 담배 같은 기호품의 취향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서 기억하기가 쉽다. 몇 번인가 이름은 되물었어도 무엇을 주문할지는 잊지 않았다. 시시콜콜한 인사로 눈을 맞춘 뒤에 'With usual?' 묻기 시작 한 이래로 사람들은 확연히 달라진 태도로 친근함을 표했다. 이름을 크게 부르며 카페로 걸어 들어왔고 살갑게 안부를 물었다. (취향을) 기억해 주었음을 (이름을) 기억함으로써 보답하려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6년 전 편의점에서도 그랬다.


'으, 이 독한걸- 살살 펴요.' 라거나

'담배가 늘었네. 무슨 일 있어요?' 같은 말로


오지랖을 부리며 말보로 레드나 더원 블루 같은 걸 계산대에 먼저 내려놓으면 사람들은 별다른 경계도 없이 시시콜콜한 고단함을 우르르 털어놓곤 했다. 빤히 보이게 기뻐했다. 이따금 바나나 우유 같은 걸 내려놓기도 했다. 기억됨으로 기뻐했으므로 기억하는 일은 내게도 기쁜 일이었다.












다시,

기억되어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궁금했다.


기억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억하는' 것은 나의 의지지만 '기억되는' 것은 야속하리만치 완벽하게 타자의 영역에 속한다. 사회적 동물의 전 생애는 육체와 자아 속에 철저히 고립되어 있음에도 완전히 고독할 수는 없다는 모순으로부터 분리되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의 기억으로 존재를 확인하고, 지워지고 잊혀갈 스스로의 입지를 다진다. 기억되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에의 욕망은 존재에의 열망과 일부 합치한다.

 


.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을까.

완벽하게 고립된 생(生)이 있을까.


기억되지 않는 존재는 무의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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