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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Dec 19. 2016

목적 없는 목적을 위한

방황, 방황, 방황.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니 뒤죽박죽 기분의 고저야 늘 있어왔고, 즐거운 날도 유쾌한 날도 왁자지껄한 날도 있지만 외롭고 쓸쓸하고 지루한 날도 있다.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지난 주는 조금 유난하게 보냈다.


지루해-

지루해-

지루해.


아침부터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모든 것이, 자꾸만 지루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그런 걸까.



빤히 보이는 문제를 제쳐두고 엄한 곳을 샅샅이 뒤적였다. 다른 문제는 없음을 여러 번 확인하고도 진짜 문제 주변은 빙빙 돌기만 했다. 두려움인지 뭔지에 가린 해결책은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깜빡깜빡 멀어져 갔다. 약이 올랐다. 자주 기운이 빠졌다. 주의를 돌려보려 애쓰며 이래저래 뭔가를 해보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나고 나면 다시 지루하고 쓸쓸했다. 관성은 거세지 않지만 보드라웠고 그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은, 편안했다. 벗어나면 아웅다웅 맞부딪히는 파도에 휩쓸려 애먹을 것이 뻔했다. 곧 찾아올 불안정을 한 발 앞서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두렵다기보다는 귀찮다고 하는 편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런대로 만족할 일이지. 욕심 많은 인간은 게을러 현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생활이 지루해 좀이 쑤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시간일까? 이 시간을 의의는 무엇인가.



그리하여 하루하루가

잃어버린 이유와 의지를 찾기 위한

방황, 방황, 방황이었다.






최근 나의 생활이란 정말이지 '일'일 다. 5일, 4일, 3일, 2일, 그리고 내일(!) 하는 식으로 휴일을 기다리며 거꾸로 카운트다운을 하다 보면 일주일이 훌쩍 가고, 그렇게 네 번의 휴일을 보내고 나면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은 어쩐지 전혀 실감이 나지 않고, 도무지 붙잡을 수도 없어서 그것이 정말로 내가 산 시간인지조차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이상한데, 석연치 않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꾸역꾸역 살았더니 언젠가부터 어디 애매한 틈새를 빠져나가려다 가슴께에 꽉- 끼여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처럼 답답하고 갑갑하고 속이 턱턱 막혔다.


'재미'가 없는 생활은 견디는 것이 된다.

견디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대체로 재미없는 인간이지만 어쩐지 그런 종류의 재미없음은 참을 수가 없다.



Brisbane, AU (2016)



어느 날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다짜고짜 뜨거운 물을 콸콸 틀었다.


앗, 뜨거.


호들갑을 떨며 들어가 앉았더니 곧 얼굴이 달아오르고, 삐질삐질 땀이 흐르고, 심장이 우당탕 뛰었다. 불안하고 폭력적인 심장 박동은 머리까지 울리며 요란을 떨었다. 그건 살아있음의 환희이던 안나푸르나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퍽퍽, 나를 힐난하는 것도 같고 간절히 간절히 보내는 구조요청 같기도 했다.


살려줘, 살려줘.



가진 게 시간뿐이던 날들이 떠올랐다.


온전히 나로 살던,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들.


정신이 아득했다.












며칠을 정신줄 놓고 헤실대는 나에게 친구 하나는 안 하던 짓,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해보라고 했다. 이상한 충고였다. 근거는 산뜻했다. 그러고 나면 몸이 더 놀라서 정신더러 정신 차려!! 하고 소리를 칠 거라는 거다. 곰곰 생각해보니 과연 그럴 것도 같았다. 급히 여권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곧 주류점이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안 마시던 술을 사려했더니 뭐, 아는 게 있어야지. 한참 진열장에 늘어선 술병의 라벨을 노려보고 있으니 찾는 게 있냐며 직원이 말을 붙여왔다.


글쎄, 뭔가 새로운 게 좋겠어요. 하나 골라주세요.


했더니 하필 골라준 것이 럼이라-. 어깨를 으쓱하곤 종이봉투에 담긴 술병의 목을 쥐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 위의 시 한 과 함께 테라스에 앉았다. 시는 읽는 둥 마는 둥 해놓곤 난데없이



아, 바다. 바다가 보고 싶다. 고 중얼거렸다. 그러고서  '아, 바다가 보고 싶었구나.' 깨달았다. 차가운 모래바닥 위에 엉덩이가 굳도록 하염없이 앉아있고 싶었다. 끈적한 모래 바람에 휘날린 머리카락이 볼 어귀를 내치도록 버려두고 싶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파도소리에 휩쓸려 펑펑 울고도 싶었다. 내일이나 적어도 모레쯤엔 틀림없이 괜찮아질 테지만 어쩐지 괜찮아지는 걸로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 바다. 바다에 가고 싶다. 혼자이지만 혼자 아닌, 함께이지만 함께 아닌 이 시간들. 마음껏 외롭지도 못한 이 시간들이 맹독이 되어 쌓이고 있다는 걸 왜 모른 척했을까.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벗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완전한 고독에의 갈구도 강했다. 완전히 충족되거나, 혹은 바스러져야만 깔끔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질척이다 굳어버린 시커먼 마음의 찌꺼기들이, 고이고 쌓여 숨통을 막고 있었다.


아, 바다. 바다에 가야겠다. 모든 걸 씻어버리러. 꾸역꾸역 집어삼킨 것들은 게워내러. 위장의 바닥까지. 목이 따갑도록, 눈물이 나도록 콜록여 쏟아내고 나면 다시 살아낼 수 있겠지. 눈물과 한숨을 쏟아내고 바닷물과 바닷바람을 들이켜야지. 그렇게 바다를 담아 돌아와야지. 바다가 되어 돌아와야지. 또 살아가야지. 사는 이유를 구할 때까지.




술은 독했고, 나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도 웃음이 났다.


그리고 며칠 뒤엔 정말이지 괜찮아졌다.


회의에 젖은 날들은 파도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그런 날들은 바다처럼 껴안으면 되는 걸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고민을 더 해 봐야지.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

'무엇'도 위하지 않는 시간일 수는 없는지.


그저 '지금'만으로 온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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