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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Oct 25. 2015

선택지 밖의 선택

보잘것없지만 끈질긴


나는 시야가 가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학창 시절 피구시간엔 내야의 맨 앞줄에 서야만 성미가 풀렸다. 지구력이나 끈기는 있어도 순발력이나 민첩성은 지지부진해서 시작과 동시에 아웃당하는 일이 번번했으나 수많은 등짝들이 시야를 가리는 것 만은 참을  없었다. 공을 움켜쥔 상대의 위치를, 공이 그리는 궤적을 굳이  확인해야만 했.


그것이 체육 시간에 내가 가져야 했던 '선택'의 여지였다.





대학에 가고선 제법 억척스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았다.

48만원을 벌면 50만원을 저축했고, 52만원을 벌면 55만원을 저축했다. 비상금이 생겼고 비상의 비상금이 생겼으며 비상의 비상의 비상을 위한 통장도 만들었다. 사뭇 진지한 스스로의 규칙으로 생활은 늘 풍족하지 못했으나 마음만은 든든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돈'만은 아니기를 바랬다.


그것이 대학 시절 내가 만들 수 있었던 '선택'의 여지였다.





예고도 없이 닥치는 것들에 수도 없이 나가떨어지기도 했으나 선택할 수 없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비록 선택하지 않을 지라도 선택의 권한은 마지막까지 나의 손바닥에 남아 있길 바랬다. 그렇게 콧대 높고 도도하게 모든 상황의 우위에 서고자 했다. 선택은 언제나 나의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선택의 여지는 점점 좁아지기만 했다.





Nepal , Annapurna (2013)





그 옛날 오래된 놀이공원에는 하늘 자전거가 있었다. 헐겁게 고정되어 좌우로 덜걱 덜컥 흔들리며 나아가는 좁은 레일 위의 자전거. 열여섯의 봄에 그 자전거 위에 올랐었다. 출발과 동시에 눈앞이 어질 했으나 안장에서 내려올 수는 없었다.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눈빛은 어딘가에 닿지도 못했다. 망설이는 순간에도 등 뒤에서 누군가 밀려오고 있었으므로 멈추어 설 수도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페달을 밟아 더 위태롭게 흔들리는 일. 오랫동안 윤활(潤滑)되지 못하여 끼익끼익 소리를 지르는 기다란 레일 위를 비명처럼 달리는 일. 그때 내가 할 수 있이란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오늘 아침엔 어쩐지  그때 생각이 났다. 왠지 줄곧 위태로운 레일 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과연 그랬다. 문득 눈 앞이 아득해졌. 나는 분명 벗어 날 수 없는 레일 위에 두 발을 묶고 있었다. 그리 움켜쥐고자 했던 선택의 우위는, 실은 겨우 팔이 닿는 반경 안의 것들을 긁어모으는 따위의 일이 었다.


진실은 잔인했다.





India, Udaipur (2013)





언젠가 오랜 친구가 말했다.


넌 참 애매-하다.

왜?

꿈으로  먹고사는 타입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현실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꿈으로  먹고사는 애들은 어떤데?

도전정신철저?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하고 싶은 건 무슨 짓을 해서라도 하지. 고집 불통인 경우가 대부분.

그럼 나는 어떤 점에서 애매한데?

의지가 보이지 않음. 대충 살고 싶어 함. 꿈은 딱히 없음.


그가 나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렸을 때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오히려 감명을 받았다. 생각 치도 못한 누군가가 이토록 나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어처구니없게도 나를 향한 모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가리켜 '대충 산다'고 해도  억울할 수 없을 만큼의 열기로 살았다. 변명의 소지조차 없는 그 시간들은 결과적으로 나를 병약하지는 않지만 심약한 인간으로 만들었다. 나는 다른 누군가처럼 뜨겁지 않다. 좀처럼 달구어 지지도 다. 피 끓는 열망이 없는 내 인생의 굴곡이란 언제고 미적지근하게 고여있을 뿐이다. 모두가 1을 향해 달려갈 때 -0.1과 +0.1의 언저리를 배회하는 것이 이 세계에 용납되지 않는 행동인 것은 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고집불통의 어린아이 같아서 나를 강제하는 일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좀처럼 달리지 않는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은 채찍질뿐일는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인색해지지는 않으려 한다. 차라리 세계의 잉여분으로 '쓸모'를 잃어버릴 지언정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공식>에 맞춰 발을 내딛는 일만은 열렬히 거 작정이다.



보잘것없지만 끈질긴 아성을 내리라.

선택 할 수 없어도 떠밀리진 않으리라.


변명같은 다짐을 까득까득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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