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은 이야기
벨이 울려 핸드폰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특별한 용건 없이는 좀처럼 전화를 거는 일이 없던 당신의 번호가 떴기 때문에.
여보세요
어색하게 전화를 받자 다짜고짜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영화를 예매해놓았노라고, 대답했지만 다음 순간 모든 스케줄을 비워야 했다.
볼멘소리를 몇 마디 늘어놓았을 뿐 오랜 경험 상 패배는 200% 확실했기에 오래 버티지 않았다.
늘 과묵하고, 권위적이었던 나의 아버지.
오랜만에 마음 먹고 예매해둔 영화 두 편을 그대로 날렸다. 취소도 안 되는 표였다.
아빠는 ΟΟ군, ΔΔ읍 시내에서 컴퓨터 가게를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10년은 훌쩍 넘었다.
지난밤 전화를 걸어와 1박 2일간 교육이 생겼다며 덜컥 나에게 가게를 맡겼다.
그 덕에 늦은 아침, 입을 삐죽거리며 주인 없는 가게를 지킨다.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드는 손님 몇을 엉거주춤 맞이하고 어리숙하게 물건을 찾아주었다. 시골의 작은 컴퓨터 가게에는 손님보다 물건을 맡기거나 뭔가를 빌리러, 혹은 당신 얼굴을 보러 온 지인이 더 많았다. 낮은 테이블을 덩그러니 앞에 두고 이따금 창 밖을 내다보기도 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고만고만한 단조로운 풍경은 금세 지루했다.
방황하던 시선은 선반 구석의 거미줄에 가 닿았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뽀얗게 먼지가 앉은 물건들 위에는 삶이 끈덕지게 들러 붙어 있었다.
무료한 시간들 틈에서 홀로 분주한 초침을 따라 희끄무레 흩어지는 과거의 흔적에 턱- 숨이 막혔다. 내가 그토록 질려했던 삶이 이곳으로부터 피어나고 있었다.
<컴퓨터>라는 간판을 여태 달고 있기는 하나 어느덧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쌓여버린 가게.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그 오랜 세월 이 곳을 지켰을까? 당신도 어쩌면 드문드문 엮인 거미줄에 매여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산악자전거는 등산_탁구_커피_수영을 거친 아빠가 가장 최근 몰두하고 있는 취미다
올해 초, 연중행사처럼 치러졌던 이사를 마친 후 오랜만에 가족끼리 식사자리에서였다.
무심한 듯 당신께서 했던 말.
나 보기에 우리 딸들,
세계를 구할 인재는 안 되는 것 같으니 멀리 가지 말고 근처에 살아라.
가까이 두고 자주 볼 심산으로 하신 말씀이었으려니 짐작은 하지만 나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역마살에 코가 꿰어 공항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은 제쳐두고서도 그 말이 '적당히 살아라'와 같은 맥락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는 다른 세대를 살았다. 강산이 두 번하고도 반을 바뀌는 동안 한 지붕 아래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꿈을 꾼 적은 없었다. 그 세대의 미덕이 안정이었을지는 몰라도 나에게 안정은 안주(安住)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다. 학교를 졸업 하고도 무엇을 하겠다 계획도 없는 딸 자식이 못 미덥기도 하셨겠지만 그래도 어찌 그런 말을.
당신께서는 나 보기엔 썩 개운치 않은 새 사업들로 늘 바쁘셨다. 뭐라도 한 번 해보려는 애틋한 몸짓임을 알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꽁했다. 컴퓨터가 막 들었던 시절, 잘 다니던 회사의 사장직을 때려치우고 자영업을 택했던 것도 어린 눈엔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심으로만 보였다.
당신 하고 싶은 일만은 빠짐없이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서운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당신 능력 껏 하는 일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당신 역시 언제나 그래 왔듯 나 하는 일에 가타부타 말이 없으셨다. 우리 사이엔 꼭 그만큼의 간극이 존재했다. 남보다는 조금 가까울지 모르나 별 다를 것도 없는.
이제야 돌아보니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마는 지독한 성질머리는 꼭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묻고 싶다.
연고 없는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아등바등 딸린 가족의 생을 연장하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두 해 걸러 바뀌는 취미생활이 당신께 어떤 활력이나 위안이 되어주기는 했나요? 혹여 때마다 늘어가는 모임과 직책들이 당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습니까?
무뚝뚝해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네는 것은 당신이나, 못난 딸이나 다를 것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긍정이라면 나도 이젠 고개를 끄덕일 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았나. 지루한 풍경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았을 당신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아직은 용기가 없어서
또 다른 10년이 더 지난 후에, '아빠'하고 부르기엔 조금 더 징그러운 나이가 되면
그때는 이 질문을 당신께 건네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막연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