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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지 Oct 17. 2015

아빠, 당신의 삶은 어떠했나요?

묻고 싶은 이야기


벨이 울려 핸드폰을 보다가 흠칫 놀랐다.

특별한 용건 없이는 좀처럼 전화를 거는 일이 없던 당신의 번호가 떴기 때문에.


여보세요


어색하게 전화를 받자 다짜고짜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영화를  예매해놓았노라고,  대답했지만 다음 순간 모든 스케줄을 비워야 했다.

볼멘소리를 몇 마디 늘어놓았을 뿐 오랜 경험 상 패배는 200% 확실했기에 오래 버티지 않았다.


늘 과묵하고, 권위적이었던 나의 아버지.


만에 마음 먹고  예매해둔 영화 두 편을 그대로 날렸다. 취소도 안 되는 표였다.








아빠는 ΟΟ군, ΔΔ읍 시내에서 컴퓨터 가게를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10년은 훌쩍 넘었다.

지난밤 전화를 걸어와 1박 2일간 교육이 생겼다며 덜컥 나에게 가게를 맡겼다.



그 덕에 늦은 아침, 입을 삐죽거리며 주인 없는 가게를 지킨다.

가뭄에 콩 나듯 띄엄띄엄 드는 손님 몇을 엉거주춤 맞이하고 어리숙하게 물건을 찾아주었다. 시골의 작은 컴퓨터 가게에는 손님보다 물건을 맡기거나 뭔가를 빌리러, 혹은 당신 얼굴을 보러 온 지인이 더 많았다. 낮은 테이블을 덩그러니 앞에 두고 이따금 창 밖을 내다보기도 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고만고만한 단조로운 풍경은 금세 지루했다.


방황하던 시선은 선반 구석의 거미줄에 가 닿았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뽀얗게 먼지가 앉은 물건들 위에는 삶이 끈덕지게 들러 붙어 있었다.

무료한 시간들 틈에서 홀로 분주한 초침을 따라 희끄무레 흩어지는 과거의 흔적에 턱- 숨이 막혔다. 내가 그토록 질려했던 삶이곳으로부터 피어나고 있었다.


<컴퓨터>라는 간판을 여태 달고 있기는 하나 어느덧 잡다한 물건들이 가득 쌓여버린 가게.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그 오랜 세월 이 곳을 지켰을까? 당신도 어쩌면 드문드문 엮인 거미줄에 매여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산악자전거는 등산_탁구_커피_수영을 거친 아빠가 가장 최근 몰두하고 있는 취미다










올해 초, 연중행사처럼 치러졌던 이사를 마친 후 오랜만에 가족끼리 식사자리에서였다.

무심한 듯 당신께서 했던 말.




나 보기에 우리 딸들,
세계를 구할 인재는 안 되는 것 같으니 멀리 가지 말고 근처에 살아라.




가까이 두고 자주 볼 심산으로 하신 말씀이었으려니 짐작은 하지만 나에겐 적잖이 충격이었다. 역마살에 코가 꿰어 공항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은 제쳐두고서도 그 말이 '적당히 살아라'와 같은 맥락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당신과 나는 다른 세대를 살았다. 강산이 두 번하고도 반을 바뀌는 동안 한 지붕 아래 살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꿈을 꾼 적은 없었다. 그 세대의 미덕이 안정이었을지는 몰라도 나에게 안정은 안주(安住)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다. 학교를 졸 하고도 무엇을 하겠다 계획도 없는 딸 자식이 못 미덥기도 하셨겠지만 그래도 어찌 그런 말을.










당신께서는 나 보기엔 썩 개운치 않은 새 사업들로 늘 바쁘셨다. 뭐라도 한 번 해보려는 애틋한 몸짓임을 알면서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꽁했다. 컴퓨터가 막 들었던 시절, 잘 다니던 회사의 사장직을 때려치우고 자영업을 택했던 것도 어린 눈엔 그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심으로만 보였다.


 하고 싶은 일만은 빠짐없이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서운한 적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당신 능력 껏 하는 일 내가 관여할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당신 역시 언제나 그래 왔듯 나 하는 일에 가타부타 말이 없으셨다. 우리 사이엔 꼭 그만큼의 간극이 존재했다. 남보다는 조금 가까울지 모르나 별 다를 것도 없는.


이제야 돌아보니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마는 지독한 성질머리는 꼭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묻고 싶다.


연고 없는 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아등바등 딸린 가족의 생을 연장하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두 해 걸러 바뀌는 취미생활이 당신께 어떤 활력이나 위안이 되어주기는 했나요? 혹여 때마다 늘어가는 모임과 직책들이 당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습니까?




무뚝뚝해 따뜻한 말 한마디 못 건네는 것은 당신이나, 못난 딸이나 다를 것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위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긍정이라면 나도 이젠 고개를 끄덕일 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았나. 지루한 풍경을 앞에 두고 생각이 많았을 당신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아직은 용기가 없어서

또 다른 10년이 더 지난 후에, '아빠'하고 부르기엔 조금 더 징그러운 나이가 되면  

그때는 이 질문을 당신께 건네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막연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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