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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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어긋난 사건을 우악스럽게 끝맺으려는 사람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집요하고 무시무시하다. 영화에서 사람들은 일어난 '죽음'의 죗값을 지울 죄인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희생양을 찾음으로써 스스로를 짓누르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반복되는 각자의 자기 구원에는 일관적으로 당사자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들은 나름의 단서를 토대로 처벌의 대상을 색출하는데 골몰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정당성'을 내세우며 희생양을 단죄한다. 책임회피가 주목적인 희생양 색출은 한눈에도 일방적이고 경솔하다. 거기서 진실은 어떤 무게도 차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다른 죄(죽음)의 발생을 목전에 두고도 개인적 보복(정의)에 도취되어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권력은 언어적이거나 물리적인 형태의 폭력으로 재생산된다. 위계를 가진 성인(경찰과 선생, 부모)으로부터 학생으로 가해지는 위압,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로부터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 힘의 차이 앞에서 약자의 반격은 우회적이고 간악한 방법으로, 혹은 자학의 형태로 나타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관계에는 공통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재한다. '(너를) 이해한다'는 착각은 되려 몰이해를 부각하고, 얼굴을 마주하고도 다른 언어를 말하는 개인 사이엔 오로지 의도한 단절만이 싸하게 남는다. 소통 불가한 자들이 주변에 널린 상황은 대체로 호러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사회가 더 긍정적이라 느낀 것은 그들 사이에 지난 잘못에 대한 참회와 나름의 해소, 그리고 용서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죄와 함께 파묻을 희생양을 찾는 진저리 나는 죄의 여정이었다. 노골적인 폭력신과 과도한 고통의 전시는 감정 소모가 심하다. 관련 트라우마 있는 사람들은 관람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