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옳고 나도 옳은 시대'의 도래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진짜 역사가 아니라, 누군가가 기록한 역사의 부분이다. 그 기록이 과거 전체를 대변할 수 없고, 기록 또한 한 사람의 주관이 들어간 편향성을 늘 지니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역사는 수많은 참고 자료 중 하나가 되어야지, 그것 자체를 믿거나 신봉해서는 안 된다.
내가 유일하게 믿을 것은 '오늘' 뿐이다. 오늘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일, 보고 들리고 경험하는 현재의 모든 것만이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믿음일 뿐이다. '나의 오늘'이 있다는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오늘'이 있음을 뜻한다. 오늘 내가 무엇을 보고 들었느냐는 나의 오늘을 만드는 것이지, 그것이 인류 역사 전체의 '오늘'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과거', 각자가 경험한 '오늘'을 공유한다. SNS, 블로그, 홈페이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눈다. 나눔이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새 인터넷은 분단과 논쟁의 장으로 나뉜다. 니가 옳니, 내가 옳니 언성을 높이고, 어느새 악플도 인터넷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제각각 자신이 옳다며 근거를 들이대지만, 그 근거 또한 무수한 근거들 중 일부일 뿐이다. 마치 동네 뒷산 가본 사람이 자기 뒷산이 제일 높다며 우쭐대지만, 한라산이나 에베레스트를 다녀 온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코웃음을 치는 격이다. 하지만 산을 타지 않고 비행기만 타 본 사람은, 산의 높이를 두고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저 둘을 이해할 수 없다. 그에게 산은 그저 비행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작은 지형물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좁은 마을 단위를 살아가던 옛날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의 잣대는 영구적으로 유지될 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가 하나가 되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하루에도 수십수백번 일어나는 오늘날,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무한한 수를 지닌다. 부분적 '옳고 그름'의 왈가왈부보다 '다름'을 논함이 더욱 효과적일 것인데, 그 어떤 지식인도 다름의 가치를 주장하지 않는다.
말로는 '다름을 인정한다'고 해놓고, 정작 강의 연단에 오른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청중들에게 주입시키기 바쁘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의 강의는 한명이 연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방식보다, 오히려 청중들 여러 명이 마이크를 들고 생각을 나누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옳은 시대, 지금은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각 개인의 '옳음'은 그 자체로 정답이 되지 못한다. 무수한 정답 중 하나에 불과할 뿐. 그래서 정리와 융합이 필요하다. 다른 이들의 경험과 사례를 합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껏 이어져 온 지식을 무작정 흡수하기보다, 중구난방으로 쌓여 온 온갖 것들의 정보들을 정리, 연구, 분석하여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의 지식 또한 누군가의 그러한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왜 오늘날의 그러한 노력하는 지식인들은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인류 사회를 통틀어 가장 똑똑한 우리가, 이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만질 때다. 옳다고 말을 함부로 내뱉기 이전에, 모두가 옳으니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