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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달쌤 Feb 22. 2021

여름 이야기

#4. 르네 마그리트-<잘못된 거울>

- 2015. 7. 23 -


진득함이 피부 비늘처럼 온몸에 휘감았다. 며칠 동안 비가 내려서인지 아무리 얇은 이불로 덮어도 도무지 개운함을 느낄 수 없다. 무거운 눈꺼풀 위로 손목시계를 바라보니 큼지막한 시침이 여덟 시를 막 지났다.


‘ 몇 시에 잠든 것일까?’


여름 방학은 나를 원룸 방바닥에서 좀처럼 떨어지기 힘들게 했다. 또 게으름 병이 도졌다. 매번 맞이하는 방학이지만 기쁨도 잠시 늘 나른함의 연속이다. 과 동기 녀석들은 아르바이트, 여자 친구와 추억 만들기, 배낭여행 등을 하느라 바쁘겠지만 나랑은 먼 이야기다. 난 그저 남들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럽다.


 뱃속이 허기져 그런지 몸이 더 축 늘어진다. 자취하면서 끼니를 챙기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등 뒤 개수대 쪽에서 퀴퀴한 음식물 냄새가 벌써 올라온다.

무언가를 꺼내서 한다는 것 자체에 손이 가지 않았다. 방바닥엔 구겨진 맥주 캔이 널브러져 있다. 어제 깜박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옆 호에서 꽤나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개나 고양이 소리를 섞은 듯 한 기괴한 소리였는데 처음 들어본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사실 한층에 3집이 서로 현관문을 마주 보고 살고 있으니 방음은 고사하고 여러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대충 씻고 배를 채우고 싶은데...’


 방학 때는 대학로 식당들이 늦게 문을 열었다. 무엇보다도 혼자 앉아 먹을 자신이 없었다. 어색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오늘도 배고픔을 지그시 눌러버렸다. 이럴 땐 원룸 맞은편 코너에 있는 편의점만 한 곳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안 공기가 더 습해진다. 에어컨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방안에 선풍기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만 할 뿐이었다. 밑단이 구겨진 남색 반바지와 색 바랜 라운드 흰 티를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모양은 볼품없지만 참 편한 옷이다.


‘ 슬슬 나가볼까’


 문을 여니 오늘도 맞은편 403호 문엔 각종 전단지가 어지럽게 붙어있다. 맞은편에 사는 녀석은 가끔씩 마주친 남자 또래 녀석인데 늘 무표정하게 먼저 고개를 돌린다. 방학 후로는 못 봤는데 고향에 내려간 것 같다. 계단을 내려갈 때 슬리퍼의 소리 울림이 오늘따라 더 시끄럽게 들렸다. 날씨 탓인지 점심 전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문드문했다. 편의점은 집에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다. 편의점 음식이 맛있는 건 아니다. 가격도 양에 비해 비싸다.


단지 편하고 가까우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보내준 돈이 있어 방학 때 식비 정도는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딸랑딸랑”


유리문을 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뽀얗고 엣 돼 보이는 피부에 긴 생머리가 단정하니 예뻐 보이는 얼굴이다. 주인아저씨가 방학 때 아르바이트생을 쓴 것 같았다. 난 얼른 왼쪽 코너로 돌아 삼각 김밥, 샌드위치를 집고 옆 음료 코너에서 맥주 캔과 콜라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 9800원입니다”


 선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물건 값을 알려줬다. 꾸깃한 만원 자리 지폐를 건네고 200원 거스름돈을 받았다. 동전을 건네 받을때 손 살결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마치 다른 세상의 무언가가 닿은 기분이었다. 가볍게 눈인사를 받고 돌아서는데도 떨림의 여운이 남았다. 사실 여자 친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에겐 여자와 이런 평범한 스킨십도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원룸 계단을 올라오니 움직여서 그런지 다시 문을 열자마자 방안의 눅눅한 공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래도 먹을 음식이 있다는 것이 마음의 위로가 된다. 차가운 콜라를 따서 몇 모금 마시니 땀으로 끈쩍했던 몸에 잠시나마 해방감이 몰려왔다. 삼각 김밥과 샌드위치를 허기진 위에 쑤셔 넣으니 포만감으로 채워졌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이 해결되니 다른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 묻은 샌드위치 부스러기를 툭툭 털고 손가락 끝에 뭍은 기름기를 물로 대충 씻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렸다.


“삐..... 삐...”


몇 초간의 웅웅 소리가 들리면서 모니터가 밝아졌다. 이제는 에너지를 소모할 때이다. 게임은 참 묘한 매력이 있다. 다른 것을 할 때는 그렇게 시간이 안 가지만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별 힘을 못 쓰니 말이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게임 속 캐릭터와 일체 되어 주변의 모든 감각이 무뎌졌다. 방안에는 게임 소리와 마우스 클릭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 얼마가 지났을까?’


 문득 현실의 감각이 살아날 때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저려왔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가 넘었다. 밖에서는 차 소리와 동네 아이들의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게임 후에 찾아오는 허무함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쉽게 집중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 하는 것이지만 늘 후회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휴대폰을 보니 방학 시작 후에는 사람들에게 연락이 더 뜸해진 듯하다.


가끔 카카오톡 사진을 보면 다들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웃는 모습과 즐거움이 찍혀 있고 좋은 말들과 글귀가 가득했다. 그런데도 현실은 흉악 범죄, 거짓, 사기, 시기 등이 가득한 걸 보면 참 아이러니할 수밖에...... 더 슬픈 건 많은 사람들의 카카오톡을 보기만 할 뿐 전화할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손가락으로 위아래로 휙휙 넘겨도 카톡 보낼 사람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그래도 연락할 과 동기 녀석 한 두 명은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진수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 동기 녀석들 중에 제일 편한 녀석이다. 대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대면 대면한 사이었다. 그 녀석은 항상 바빠 보였고 무엇보다도 늘 점심을 학교 식당에서 먹었다. 학교 식당이 다 그렇겠지만 가격이 싼 것 빼고는 먹을 것이 참 없다. 난 무엇보다도 맛이 중요하기에 그 녀석과 점심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과 과제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통하는 것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뭐 내가 자주 밥을 사기도 하니 그 녀석도 나와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해하는 눈치였다.


“ 뭐하냐?”

“ 학교”

“ 학교였어?? 학교까진 웬일로?”

“ 도서관 책 빌린 거 반납하려고”

“ 시간 되면 우리 집에 오너라. 심심네.”

“ 알겠다. 보고”


 마지막 이 한 줄은 못 온다는 뜻이다. 폰을 책상 옆에 던지고 우두커니 지켜봤다. 머리가 더 지끈거리고 비가 오려는지 습기가 한층 더 짙어졌다. 남은 맥주를 마시고 끈쩍한 방바닥에 누웠다. 술기운 인지 날씨 탓인지 몸이 바닥에 붙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겼다.


주위가 잔뜩 어둡다. 사방이 고요하고 검은 그림자로 덮인 것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은 자신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빛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다. 발끝에는 나뭇가지 같은 것들이 있는지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메마르게 으스러지는 소리가 온몸에 전해졌다. 마치 알 수 없는 의식의 저편에서 헤매는 느낌이다. 손끝을 내밀 때마다 이끼가 잔뜩 낀 나무껍질의 축축함이 와 닿았다. 눅눅하고 비린 냄새는 코끝을 맴돌았다. 온몸에 신경이 일제히 곤두섰다.


‘여긴 어디지?’


 시간이 좀 지나자 주위의 어두움에 차츰 눈이 익숙해지는지 형체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빽빽하고 가지들이 겹쳐 보였다. 미로 속에 갇힌 것 같았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숲 속인 듯싶은데 그 흔한 풀벌레나 작은 새소리하나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는 심장 박동 소리만 규칙적으로 점점 더 크게 울렸다. 그때였다.


“또각또각 ”


갑자기 지금 내가 있는 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이고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선명한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또각또각 ”


소리는 더 명확하게 들렸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방금 들린 소리에 몰입되었다. 머리부터 등 쪽 에는 묘한 한기가 지나가면서 온 몸엔 닭살이 잔뜩 부풀었다. 숲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가 있는 것일까? 몸을 낮추고 주위를 살펴봐도 소리의 근원지는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떼지 질 않았다.


“또각또각 또각”


소리가 점점 나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마음이 요동이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소리의 울림이 뒤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맹수를 마닿뜨린 들소처럼 소리가 가까워질 때처럼 몸이 점점 굳어갔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순간 뒷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전해지는 차가운 손길이 내 뒷목을 움켜잡았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카톡.. 카톡...”


눈앞에 하얀빛이 들어왔다. 형광등의 백색의 빛이 마치 날 구원하는 손길처럼 느껴졌다. 머리가 현실 감각을 하나하나 찾았다. 꿈치 고는 너무나 생생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하게 젖어있다. 손목시계는 12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아무리 더워도 잠을 설치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목이 타고 말랐다. 냉장고 안의 남은 콜라를 한 번에 들이켜니 목으로 타고 넘어가는 시원함이 내 안의 찝찝한 마음을 씻어냈다. 잠시나마 마음이 진정되었다. 휴대전화에는 진수 녀석의 카톡이 있었다.

“ 뭐하냐? ” ---10시 49분

“ 자냐? 더워서 그런지 잠이 안 온다. 내일 너희 집에 갈게”----10시 59분


난 내용을 무심히 쳐다봤다. 오늘 왔으면 좋았을 것을. 반쯤 열린 창문을 신경질적으로 활짝 열어 졌혔다. 시원함은 온대 간대 없고 습기 찬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다시 잠자리에 들려고 눈을 감아도 좀처럼 잠 속에 의식을 맡기기가 힘들었다. 밤 12시를 막 지났는데 평소와는 달리 너무 적막했다. 그 흔한 고양이 소리, 차 소리, 동네에 술 먹은 아저씨들의 고함도 없었다. 창 밖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어둑한 거리를 소리 없이 비취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검은 형체의 그림자가 골목 끝에서 순간 빠르게 우리 원룸 쪽으로 들어왔다. 사람이 걷고 뛰는 그런 속도가 아니었다. 고양이나 개 치고는 너무 큰 느낌이었는데 워낙 순간적으로 지나가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또각.. 또각..”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꿈속의 소리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아니 똑같았다. 마음에 두려움이 순식간에 들어찼다. 몇 초간의 정적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귀는 벌써 현관문 쪽으로 가 있었다.


“ 또각,, 또각,, 또각..”


소리가 한층 더 올라오면서 커졌다. 나는 눈으로 현관문의 시금세를 얼른 확인하고 조용히 문 앞에 섰다. 눈구멍으로 밖을 바라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긴장감으로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갑자기 주황색 계단 등이 1층부터 켜졌다. 하이힐 소리는 주위의 모든 어둠을 깨트렸다.


곧 이 소리의 정체가 드러날 터이다. 내 눈은 감시 카메라처럼 전방을 흔들림 없이 눈구멍을 주시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의 동요와는 달리 묘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순간 눈앞에 드러난 여인의 모습은 기억의 이미지 속에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으로 마음에 새겨졌다. 검은 생머리 결에 유난히도 희어 보이는 피부, 검은색 타이트한 원피스에 짧은 치마 밑단, 미끈한 몸매, 붉은 입술, 특히나 눈에 뜨는 것은 귀 모양이 유달리 뾰족했다. 게임 속에서 나온 여자 주인공처럼 보였다. 문 앞의 여자는 키 도어를 올리고 번호를 눌렀다. 희고 기다란 손에 절로 눈이 갔다.


“ 띠... 띠.. 띠...”


번호를 누르던 손가락이 갑자기 멈췄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 순간 무언가를 훔쳐보다 걸린 사람처럼 마음이 요동쳤다. 굳어버린 버린 몸과 눈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여인은 누군가 자기를 보는 것을 알아챈 것처럼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여인은 나를 한 치의 흩트림 없이 꿰뚫어 보았다. 보통 눈이 아니었다. 마치 너를 알고 있다는 명백한 경고의 눈이었다. 눈동자의 검푸른 색깔이 섬뜩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가에 퍼지는 엷은 미소를 보자 나도 모르게 뒤로 나자빠져버렸다. 너무나 두렵고 떨렸다.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더위에 늘어진 몸은 온대 간대 없고 몹시 추운 겨울을 만난 아이처럼 온몸이 떨렸다.


-7. 24-


 어제 일이 머릿속에 너무 강하게 남아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방안의 불과 텔레비전을 다 틀고 있다가 두려움에 떨면서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새벽녘에 비가 내려서인지 더운 공기는 잠시나마 식어 있었다.


‘어제 본 여자는 누구일까?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내 마음 한 곳에 똬리를 틀고 끊임없이 묻고 있었다.


 하지만 답 없는 물음의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내 방을 채운 어둠은 없어지고 밝은 빛 만이 가득했다. 아침이었다. 복잡한 머릿속과 찝찝한 기분 때문에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학교에 가서 좀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보이는 대로 옷을 주워 입고 문 앞 손잡이를 잡는 순간 어젯밤의 긴장감이 손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문 밖은 조용했다. 온 신경이 곤두섰다. 차마 눈구멍으로는 밖을 볼 수가 없었지만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은 더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문을 과감히 열었으나 문 밖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익숙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계단을 부리나케 내려왔다. 밖으로 나오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골목을 돌아 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뭔가 아주 소란스러워 보였다. 처음 보는 학교 앞모습에 나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도로변에는 경찰차가 가득 세워져 있었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몇몇 방송용 카메라를 든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 카톡” “카톡”


“ 야... 대박,, 뉴스 봤나?”


진수 녀석의 카톡을 보았다.


“ 어제 우리 학교서 살인 사건 발생”


도무지 믿기 힘든 현장이 내 눈앞에 있었다. 살인 사건이라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요란한 길 건너의 상황은 사실을 더 확실히 알려 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 난거지?’


 안 그래도 어제 그 일 때문에 마음속에 찝찝한 기분이 남아있었는데 살인 사건이라니...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스마트 폰의 인터넷을 켜보니 “oo대학교 살인 사건 발생”이라는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경찰은 cctv 분석 결과 유력한 용의자로 184센티의 20대 중반의 남자를 찾고 있다고 되어있었다. 진수는 벌써 학교에 와 있었다. 난 얼른 진수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었다. 과 동방이라고 해서 그리로 향했다. 정문 왼쪽 농대 건물 주변은 아예 출입 금지가 되어 있어 들어가지도 못했다. 아마 그 근처에서 사건이 발생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과 동아리 방은 농대 건물과 좀 떨어져 있어 들어갈 수 있었다. 진수 녀석은 내가 오자마자 한 것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피해자가 우리 과 후배라는데 너도 진희 알지?”


순간 머리에 강한 충격이 왔다.


“진희하고?” 잘 아는 후배였다. 아니 우리 과 후배 중에서 제일 예쁘고 밝은 아이였다. 그리고 진수 녀석도 알고 있다시피 내가 꾀 호감 있어하는 후배였다. 너무 인기가 많아 접근도 못했던 후배였다. 멀리서 지켜만 보아도 나에게 많은 설렘을 주는 후배가 어쩌다가...


 “ 기사 읽어 봤지? 어떻게 당했는지...


 난 말문이 막혀서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 손목을 날카롭게 그었다고 하는데 주변에 핏자국이 거의 없어. 누가 피를 고의로 뽑아 가져 갔다는 말도 있다고 하더라. 완전 사이코 짓이야.”


‘방금 이 녀석이 하는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마치 고속도로에서 연쇄 추돌하는 자동차처럼 정리되는 것 없이 마구 잡이로 생각들이 부딪히고 있었다.


“ 그에 말이 되냐... 핏자국이 없나니..”


애써 태연한 척 말을 이었다.  


 손목은 자살하는 사람이 주로 하는 방법인데 타살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왠지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진수에게 더 묻고 싶었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학교 주변은 너무 어수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학교 정문에서 몰려왔고 인터넷에서는 관련 뉴스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난 진수 녀석이 떠벌리는 소리를 듣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제부터 너무 이상했다. 이웃집 여자부터 그렇고...

늘 나의 여름 방학은 따분하고 평이하였다. 이렇게 내 주위가 혼란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학교 정문을 피해 일부러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쪽문으로 돌아갔다. 가는 발걸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거리에 아스팔트는 여름의 햇볕에 더욱더 많은 열기를 거리로 쏘아 뱉고 있었다.


 집 근처에 다다르자 나도 모르게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의 시원한 공기와 그곳에서 보기만 해도 잠시나마 다른 잡념을 잊게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딸랑딸랑”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열기를 식혀줄 오아시스는 찾지 못하고 마치 신기루에 속은 느낌이었다. 마음의 실망은 어쩔 수 없었다. 음료 코너에 콜라를 두어 개 집고 계산대를 향했다.


“ 띠.. 띠..”


계산하는 아저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코드를 찍었다.


“딸랑딸랑”


문 여는 소리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켰다..


“ 아빠, 늦어서 미안해”

“ 늦 잠잤어? 이러면 용돈 못 준다”

“ 예이.. 오늘 더 늦게까지 할게요.”


뜻밖에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아 손님, 2400원입니다.”


얼른 돈을 주고 나가려는데 편의점 주인 딸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눈인사를 했다.머릿속에 복잡했던 생각들이 잠시나마 없어지고 설렘이 들어찼다.


‘어떻게 모녀가 저렇게 다를 수가 있지? ‘


아저씨가 풍기는 외모에서 저렇게 밝고 이쁜 딸이 나오다니 선 듯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계산하고 나와서도 편의점을 돌아봤다. 집 앞 다다랐다. 옆집 여자가 자꾸 생각나서 계단을 올라가기가 찝찝했다. 그래도 혼자 있고 싶고 얼른 게임 속 세상으로 내 생각을 넣어버리고 싶었다.


 어제부터 평범했던 나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마치 길을 잃고 헤 메다가 늪 속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하루아침에 현실세계와 가상 세계가 바뀌어 버린 것 같다. 콜라를 한잔 들이켜고 가상 같은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나의 현실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컴퓨터 버튼을 눌렀다. 그곳은 언제나 내 생각에 따라 꾸며지는 곳이니 말이다. 컴퓨터가 돌아가는 소리는 마음의 안정감을 심어 주었다.

오늘도 여지없이 마우스 소리와 게임 소리가 나의 의식을 덮어가고 있다.


-7. 30-


 며칠 전 교내 살인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뉴스는 차츰 사라지고 내 마음도 평정을 서서히 되찾고 있었다. 옆 집 여자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방학도 벌써 반이 지나갔다. 날이 갈수록 아쉬움이 있었지만 방학은 항상 지날수록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벌써 시간이 11시를 지나고 오늘도 방안의 열기가 가득 찼다. 방학 때는 거의 아점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주된 이유는 나의 귀차니즘 때문이지만 평일 이 시간대에 일하는 편의점의 그녀를 보는 일상의 짧은 설렘에 중독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독 더위가 심하다. 기상청에서는 연일 폭염특보를 발령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습도 때문인지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더위도 더위지만 그보다도 지난주의 일 때문에 잠을 더 설쳤다.

그래서인지  밤마다 불을 켜고 자는 새로운 습관은 고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진수 녀석이랑 과동아리방에서 보기로 했다. 방학 때는 게임 말고 친구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친구가 늘 같은 녀석이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해가 길어서 저녁 7시가 되어도 그리 어둡지 않았다. 문밖을 나 설 때면 늘 섬뜩함을 지울 수 없다. 다들 휴가를 갔는지 대학로 저녁거리는 더 한산했다.


“ 야... 나 도착... 언제 오냐...”- 7시 15분

“ 올 때 맥주랑 물이랑 좀 사와여”-7시 16분


돈이 궁해서인지 처음에는 이런 말도 못 하던 녀석이 이젠 너무 쉽게 요구한다.


‘ 구두쇠 녀석’


동아리방에 오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밤에도 벽에 붙인 작은 에어컨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동방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진수는 대짜로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이었다.


“ 일어나 인마”

“ 너도 좀 사라... 성격아...”


별말 없이 우리는 맥주 캔을 따서 마셨다. 동방엔 오래된 망원경이 구석구석에 쳐 박혀 있었다. 사실 말이 천문 동아리지 요즘은 후배도 거의 없고 인기도 없는 동아리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별 보고 낭만을 즐길 대학생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 오늘 한번 찾아봐?”


느끼한 녀석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 한번 찾아보자, 먼저 찾는 놈이 2차 게임방 쏘는 걸로 하자”

“그래.. 콜...”


작년부터 여름 방학 때 우연히 과방 망원경으로 데이트하는 커플을 찾으면서부터 시작된 우리만의 놀이였다. 그때 숲 속 밴치에서 커플 하나가 입을 맞추고 다소 격하게 스킵쉽을 하는 것을 보면서부터 이 녀석과 작년 방학 때 며칠 동안 온 학교를 망원경으로 훌터 보았던 기억이 살아났다.


“ 뭐 보이는 거 있냐?”

“ 아니... 운동하는 사람밖에는...”

“ 잠깐...”


진수 녀석이 연못 쪽 안쪽 밴치를 가리켰다. 나도 얼른 내 망원경의 줌을 땅겨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남녀 학생이 서로 뜨겁게 키스를 하고 있었다.

“ 오예~ 게임방~ 네가 또 쏴라.”

얄미운 녀석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대답 대신 정문 쪽으로 망원경을 돌렸다. 그곳에는 가로등 빛이 밝아서 얼굴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때였다. 아까 편의점에서 본 아르바이트생이 신호등 신호를 건너 학교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 정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모습을 계속해서 눈으로 좇았다.


“ 삐졌냐?? 뭘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냐?”

“ 예쁜 여자라도 봤냐?”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 녀석이 물었다.


“잠깐만.... 내가 전에 말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학교로 오는데? 우리 학교 학생이었나?”


어느새 진수도 나의 망원경과 똑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 오 예쁘네... 근데 어디 가지?? 9시가 다 돼가는데 말이야.”

“ 어느 멋진 놈이랑 데이트하러 숲 밴치로 가나? 크크..,”

“ 닥쳐 인마 ”


녀석이 자꾸 놀렸다. 그런데 걸어가는 방향 반대편에서 한 키 큰 남자가 걸어왔다. 여자는 반가워하며 남자에게 달려가 팔짱을 꼈다.


“ 낄낄... 맞잖아... 어쩌냐... 넌 좋아하는 사람마다 임자가 있냐??”

“ 이 자식아 닥치라고 했다.”


나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한 것 더 재미있어했다.

두 사람은 점점 더 어두운 안쪽 밴치로 갔다. 그곳은 CCTV도 없는 어두운 곳이었다. 사실 맨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천체 망원경은 어두운 것을 잘 볼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어렴풋이나마 빛이 거의 없어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벌써 자리에 앉아 입을 맞추고 있었다.


‘ 정말 이걸 봐야 하나...’라고 마음에 되뇌었지만 본능의 힘은 어찌할 수 없었다.


“ 야 근데 남자가 좀 이상하지 않냐... 자세도 그렇고...”


진수의 말을 들으니 이상했다. 키스를 하는 것치곤 여자의 머리가 너무 옆으로 젖혀서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여자의 몸이 심하게 경련을 하고 떨렸다. 그리고 남자는 계속 여자의 목에 입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왼손은 여자의 입을 막고 있었다. 몇 초 뒤 여자의 몸이 축 늘어지는 듯했다.


“ 야... 이거 혹시....”


진수의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남자는 여자를 밴치에 누이고 더 깊은 학교 담벼락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서웠다. 내 눈 앞에서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 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가 봐야 하나??” 말문이 막힌 나도 어찌할지 몰랐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 112에 신고하자, 한 여자가 쓰러졌다고...”


진수는 전화기를 잡고 연신 침을 목으로 넘겼다.


“ 신고해야겠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자신의 전화기로 사건 위치와 상황을 간략하게 말하고 끊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 얼마가 지났을까? ’


 어색한 침묵을 깨고 그 녀석이 말했다.


“ 그냥 가자... 알아서 하겠지 ”

 

우리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동방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학교 길 가로등에는 벌레들만이  불빛을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도 유난히 조용한 밤이었다.         


-7. 31-

어둡다. 사방이 또다시 어두움에 휩싸였다. 지난번 공포감이 내 몸 속속히 스멀스멀 올라온다. 듣기 싫은 익숙한 심장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각”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소리는 정말로 나를 힘들게 했다. 소리 지르고 싶어도 도망가고 싶어도 뜻대로 되질 않았다. 몸은 또다시 굳어버렸다.


“ 쾅, 쾅, 쾅”

“전현민 씨 안에 계십니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문을 열었다.   


“ 전현민 씨 되십니까?”

“어제 00 대학교 살인사건 참고인으로 서에 가셔야 합니다.”


아직 정신도 덜 깬 상태에서 험상 궂은 두 형사가 와서 대뜸 경찰서에 가자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아마 진수 녀석 휴대폰으로 신고해서 그 녀석이 나도 같이 봤다고 한 것 같았다.

수갑은 안찼지만 경찰차를 타니 완전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형사들은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했다. 서에 도착하자 드라마에서 봤던 취조실(?) 비슷한 곳으로 데려갔다. 진수도 그곳에 앉아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차영욱 형사입니다”

“두 분이 어제 같이 있으셨지요?”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에는 무언가를 캐내려는 마음이 묻어났다.


“네... 같이 동아리 방에서 망원경으로 봤습니다.”

“몇 시쯤이었나요?”

“대략 10시 전후 였던 것 같습니다.”

“ 혹시 두 분이 피해자 여성을 전에 본 적이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알고 있지만 무어라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동네 편의점에서 본 아르바이트 생 같았습니다.”

“혹시. 전에도 훔쳐보거나 관심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진수 녀석은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 없습니다.”


담당 형사는 어제 우리가 본 여학생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유일한 목격자라고 이야기했다. 혹시 남자 인상착의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 키는 180 좀 넘어 보이고 마르고 잘 생겨 보였습니다.”


진수는 벌써 이 질문을 받았는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건의 추이를 보고 또 증인으로 참석하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서를 나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진수 말에 의하면 어제 아르바이트 여자는 날카로운 속곳 같은 것으로 목이 찔러 죽었다고 했다. 근데 몸 안에 피가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마치 저번 살인 사건의 데자뷔 같았다. 이 사건으로 우리 대학은 또다시 매스컴에 올랐다. 문제는 범인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과학 수사에도 별 진전이 없다는 것이었다.


“ 어쩌냐 우리 이제? ”

“ 몰라 인마 ”

“나 오늘 집에 가기가 그래... 집에서 한소리 듣고 나왔어... 너희 집에서 잘게”


염치없는 녀석이 밉살스러운 말만 골라했다.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을 보았다.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주인아저씨 얼굴이 떠올라 괜스레 더욱 마음이 무겁고 미안했다.


‘ 어느 놈인지 몰라도 정말 천벌을 받아야 될 놈이다 나쁜 세끼’


마음에 울화가 가시지 않았다. 우리 둘은 번갈아 가며 게임을 했다. 서로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저녁이 되고 출출했다. 진수 녀석이 라면을 끓였는데 구두쇠답게 정말 짜게 끓였다.


‘어쩌다가 저 놈이랑 엮여서... ’


라면을 먹는 녀석의 얼굴을 보니 후회 아닌 후회가 몰려왔다.


“ 키야응,, 키,, 야..”


또렷한 짐승 소리에 눈이 떠졌다. 진수 녀석도 소리를 들었는지 깨어 있었다.


“ 이게 저번에 네가 말한 소리냐? 진짜 이상하다. 뭐 이런 소리가 다 있어?”


저번에 들었긴 했지만 괴상 한 건 다를 바 없었다. 더 날카롭고 거슬리는 소리였다. 나랑 진수는 서로 쳐다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 야, 이게 무슨 소리고? 또 경찰에 신고할까?”

“ 주소만 알려주고 빨리 끊으면 되잖아. 아까 내 휴대폰 썼으니까 이번에 네가 해 ”


녀석은 자기 생각에 흡족한 듯 보였다. 경찰에 신고하면 분명히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최근에 본 옆집 여자의 모습이 떠올라 신고하기가 꺼려졌다.


"괜히 신고 했다가 헷고지 당하면 어쩔려구... 그냥 있어 보자.."


그 후에도 그 괴상한 소리는 20~30분간 더 나다가 잠잠해졌다. 진수와 나는 말없이 남은 맥주를 먹고 새벽에서야 잠이 들었다.



-8. 13-

 

여름 방학도 어느덧 중반기에 접어 들었다. 장마가 끝나고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2주전에 일어 났던 사건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범인은 결국 잡히지 않았다. 이번 해 여름 밤의 캠퍼스 낭만은 사라져버렸다. 사건이후 해만 떨어지만 캠퍼스 안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진수 녀석은 그일 후 연락이 뜸해졌다. 자연스럽게 서로 마주치기가 꺼려졌다. 옆집의 이상한 소리도 잦아들었다. 모든 것이 점점 제자리로 다가가고 있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일생에 한두번은 이상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일 말이다. 아직 나에게 이 생생하고 끔찍한 경험이 마치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에 먼지가 쌓이듯이 언젠가는 그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새로운 공포의 똬리는 언제든지 나를 옮아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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