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서호시장에서
며칠 전 휴일 통영 서호시장엘 다녀왔다.
휴일이라 그런지 정오가 한참 지난 시간이었지만 시장 안은 제법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던 터라 그곳에 시락국으로 유명한 가게가 있다 하여 찾아가 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게 안엔 제법 손님들이 있었다. 시락국을 파는 곳이라 나이 지긋한 분들만 있을 줄 알았건만 의외로 젊은 커플들이 많았다.
시락국은 시락국 맛이었다. 푹 고은 잘 말린 시래기와 멸치로 맛을 낸 육수, 그리고 된장으로 삼삼하게 간을한 그런 시락국이었다. 특이한 건 밑반찬들이 뷔페식이었다는 거다. 공사장 인근 함바식 뷔페처럼 여러 가지 반찬이 한쪽에 놓여있고 원하는 반찬을 가져다 먹게 되어있었다. 무엇보다 비싸지 않아 저렴하게 한 끼 든든히 해결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시장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휴일의 붐비는 시장 속에 상인들 모습이 활기차다.
한쪽에선 큰소리로 호객을 하고 한쪽에선 흥정을 해대며 또 한편에선 좌판에 꺼내놓은 각종 해산물들을 다듬고 씻어내느라 바빴다. 횟집도 수산물집도 건어물집도 저마다 분주했고 그들 모두의 얼굴과 몸짓에서 활기가 흘러넘쳤다.
시장을 돌아다니는 손님들도 바쁘긴 매한가지였다. 대부분 한 손이나 양손에 검정 봉지 두세 개를 들고 다녔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좀 더 싱싱하고 저렴한 상품이 없는지를 끊임없이 훑어보고 있었다.
상품이 마음에 들면 슬쩌기 다가가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가격을 묻는다.
"이거는 얼맙니꺼?"
"저거는예?"
이것저것 가격을 물어보는 폼이 상품은 맘에 드는데 가격은 그렇지 않은 눈치다. 살 마음이 없는 거다.
가게 주인아주머니도 이미 그걸 눈치챘는지 적당히 대꾸하고 자기 할 일에 열중한다.
"좀 비싸네"
주인이 들으라는 듯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로 한마디 하고 손님이 돌아선다.
그 말을 들었는지 아닌지 주인의 얼굴에 불만이 스쳐가지만 이내 일에 묻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비싸다고 돌아선 손님 역시 어느새 그 일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다른 건 없나 하고 시장 이곳저곳을 열심히 훑어본다.
손님도 주인도 그저 잠깐의 일이었을 뿐 그걸로 끝, 뒤끝은 없다.
저만치 한쪽 편 횟집에선 특이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소년의 티를 다 벗지 못한 앳된 얼굴의 청년 하나가 초롱한 눈빛을 하고선 아버지로 보이는 아저씨의 옆에 서서 그가 회를 써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다른 상인들과는 달리 젊디 젊은 그 청년이 호기심 가득한 진지한 눈빛으로 칼질을 눈에 새기는 모습이 유독 인상 깊다.
시장을 돌다 보니 이들이 내뿜는 활기가 궁금했다.
그들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왜 그렇게 활기찰까?
아마도 그들에게 이것은 일이 아니라 업(業)이라서 그럴 것이다. 업 중에서도 직업이 아닌 생업이라 그럴 것이다. 시장에 나와 칼질을 하고 물건을 팔며 가게를 여는 것이 일이고 업무가 아니라 그들의 생활인 것이다.
그들의 생생한 표정과 활기찬 몸짓은 그 때문이리라.
물론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되는 것도 한몫을 할 것이지만.
그러고 보면 우리네들은 생업이 아닌 업무를 한다.
생업은 생활과 연결되고 생활은 곧 삶이 되지만 업무는 생활이나 삶과는 분리된 독립적인 '일'이다.
조직과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회사와 개인의 역량으로 운영되는 장사가 같은 것은 아니니 회사의 일이 생활이 되어버리면 곤란하기는 하다. 조직 속의 개인이 시장의 상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역량만 믿고 의지해 업무를 해나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곤란한 상황이 생길 것이다.
그럼에도 상인들이 가진 활기를 많은 회사원들이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된다면 업무의 스트레스와 짜증들이 조금은 누그러지리라. 조금 더 살만한 삶이 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