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01월 15일
발목이 또 시큰거려와 산책을 나갈지 말지 잠시 고민했지만 오늘은 일요일.
짜파게티는 못 먹어도 산책은 가야 하는 날이다.
저번 산책 코스는 도로변이라 무척 시끄러웠기에 이번엔 좀 조용한 집 주변 나즈막한 동산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동산이라고는 해도 왕복 2차선의 좁은 자동차 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라 힘들진 않다.
단지 차도 양 옆 좁은 보행공간에 큰 차들을 많이 주차해 놓아, 오가는 차들은 좀 신경 써서 걸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산길을 걸어보지 않은지가 꽤 되었다.
봄이 올 무렵엔 산길도 한 번 걸어봐야겠다.
며칠 비가 내려 풍경은 축축하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했던 날씨가 이제는 좀 다시 겨울다워지려는지 찬바람도 제법 분다.
아마 내일이면 약간은 겨울다워진 날씨가 되리라.
동산의 중간쯤엔 시내버스 충전소가 있는 넓은 부지가 있는데 커피숍과 골프존, 식당등이 있어 사람들이 제법 찾아든다.
이 동산 중턱에 커피숍과 식당이 있는 이유는 이곳이 경치가 좋아서이다.
바다변 절벽 같은 곳에 있는 부지라 여기에선 바다와 섬과 도시의 경치들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그런지 공기가 좋다.
바다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셔본다.
시원하고 신선한 공기가 부는 바람과 함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이 공기들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기 보이는 저 산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바다에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잔뜩 흐려 내려앉은 저 구름사이에서 왔을까?
어디에서 태어나 무엇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과거의 공기일까 현재의 공기일까?
밤하늘의 별은 현재의 별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은 현재의 별이 아닌 몇 년에서 몇 십 년, 몇 백 년도 더 전의 모습이다.
오늘 당장 그 별이 사라지더라도 그 사실을 우리는 빛이 사라지는 그날까진 눈으로 확인할 순 없다.
내가 지금 마신 이 공기도 이미 죽어버린 공기일까?
태어나 이곳에 오는 동안 이미 그 삶을 끝냈지만 흔적만 남아 대기를 표류하다 나에게 닿았을까?
나는 과거의 환영을 호흡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만 나는 지금 호흡하고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 볼 어느 별이 이미 죽어버린 별이라고 할지라도 내 눈엔 여전히 반짝이고 살아있는 하나의 별일뿐이다.
과거가 현재와 함께하고 현재는 미래로 투영된다.
어쩐지 우주란 하나의 거대한 연속적 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원래 하나인 세계.
동산을 내려오는 길에 하늘에 정지된 듯 떠있는 새를 보았다.
마치 공중에 줄이라도 있는 양 미동도 앉고 떠 있다 바람을 타고 천천히 움직이다 서다를 반복한다.
어쩌면 나처럼 산책을 나왔다 마시는 공기에 잠깐 의문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새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바람에 균형을 맞추며 우아하게 정지해 그냥 보이는 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