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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22시 53분

by 천우주


시계를 쳐다보니 자정까지 이제 1시간 남짓 남았다.

생일의 날도 이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종일 빈둥거리겠노라고 계획했고 계획대로 빈둥거렸지만 가슴 한쪽엔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아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코 안쪽 깊은 곳, 그러니깐 양 눈의 사이 안쪽에서 며칠 전부터 자리 잡은 감기몸살의 덩어리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계속 찝찝히 남아있다.

내 백혈구들이 열심히 싸워주고 있지만 이놈도 만만한 놈은 아닌지 코 안 쪽에 단단히 수성하고 지금까지 며칠을 굳건히 버티고 있다.

이러다 기회가 되면 단박에 몸전체로 퍼질 것이다.

그런 상황까지는 안 가길 바라지만 그렇게 된다면 다시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축하받지 못한 생일은 아니었다.

생일축하 겸 저녁도 며칠 전에 먹었고 친구들로부터 축하인사도 받았으니 이만하면 꽤 성공한 생일인 셈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이 허전함은 외로움 때문일까?

이제 다 자라 혼자 살아간다게 가져다주는 외로움일까?


다시 시계를 보니 23시다.

1시간 남았다.

식탁 위를 보니 아까 사놓은 미역국밥이 보였다.

사놓긴 했지만 저녁을 많이 먹은 탓에 다음에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생일이 지나기 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컵밥답게 조리법은 간단했다.

밥과 스프와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3분만 돌리면 O.K

이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허기로 먹기도 하고 마음으로 먹기도 한다.

오늘의 미역국밥은 마음으로 먹기로 했다.

마음으로 먹은 미역국밥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데는 부모님, 그중에서도 특히 어머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생일날 미역국을 먹어야 인복(人福)이 좋아진다고도 한다.

두 번째 말은 그다지 신뢰할만하지는 않지만 잘 맞추어 풀어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미역국을 먹는다는 건 대개 누군가가 생일을 챙겨준다는 뜻일 테니 그걸 반대로 생각해 보면 미역국을 못 먹는다는 건 챙겨줄 누군가가 없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매해 생일을 축하하고 챙겨주는 누군가가 항상 곁에 있다는건 인복이 있다는 뜻일테다.


하지만 누군가가 챙겨주지 않아도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든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나의 손과 나의 발로 당당히 가게로 걸어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미역국 컵밥을 하나 사들고 들어와 정성스레 스프를 넣고 물을 붓고 3분을 기다린 뒤 초라하지만 근사한 마음으로 그 앞에 앉아 입가에 미소를 가만히 띄운 뒤


"내 생일 만세~~'

'너 이놈 잘 태어났구나, 앞으로 만수무강하고 부디 좋~~은 사람, 사랑받고 사랑 주는 올바른 사람이 되어라'

하며 스스로 축복해도 되니 말이다.


그런 말이 아니라도 요즘 많이 통하는 말로

'너 이놈 아주 큰 부자가 될 게야 허허허'

'이거 이거 딱 보니 건물주가 될 관상일세 그려'

이렇게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게 뭐든 내가 들어 기분 좋은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해도 외롭긴 외롭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외로우니까.

다만 내가 가진 외로움을 잘 끌어안고 다독거리며 살아가면 되는 거다.

더구나 우리 마음속엔 외로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용기와 희망도, 기쁨과 행복도 있다.

어떤 감정도 다 내 것이고 바로 나 자신이니 버리지 말고 잘 가져가야 한다.

내 외로움은 나의 것.

누구도 내 외로움을 뺐을 수는 없다.

외로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비문투성이일지언정 오늘의 글도 쓰지 않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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