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함을 만나다
너로 태어나 나를 사랑해야지
삼랑진 IC를 내려 김해/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낡은 가건물로 지어진 국숫집을 하나 볼 수 있다.
'태극기가 펄럭입니다'라는 다소 특이한 상호를 가진 곳인데 일전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본 바에 따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했다.
일명 '태극기 국숫집'.
내가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 바로 국수이다.
찬국수 더운국수 비빔국수 다 좋아하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국수는 뭐니 뭐니 해도 따뜻한 멸치 육수에 소면을 말아 내어놓는, 흔히 잔치국수, 촌국수라고 부르는 바로 그 국수이다.
그래서 지역 주민이 추천하고 외관도 이름도 특이한 태극기 국숫집이 무척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시간대를 못 맞춰서 그런지 갈 때마다 항상 문이 닫혀있어 발걸음만 돌리곤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운 좋게도 점심시간에 맞추어 그곳을 지나게 되었고 마침내 태극기 국수의 맛을 볼 수 있었다.
삼랑진(三浪津)
참 예쁜 이름이다.
한자 그대로 의미라면 세 개의 물줄기가 모여드는 곳에 지어진 나루터라는 뜻이겠지만 뜻을 떠나 '삼랑진'이라는 이름이 주는 그 어감이 나는 좋다.
'사랑'과 비슷해서 그럴지도.
눈으로 사물을 판단하듯 글자와 소리로도 사물을 판단할 수 있다.
내게 삼랑진은 몇 번 가보진 않았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어딘가 순수한 이야기를 곱게 간직하고, 마을 곳곳에 작고 예쁘고 소중한 것들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그래서 삼랑진을 지나칠 때면 괜스레 조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국숫집이 있는 곳은 국도와 접한 길가에 있는지라 주차할 때가 마땅치 않아 근처 200미터쯤 떨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야 했다.
겨울치고는 제법 따뜻한 날씨라 걷기도 좋았고 짧은 거리지만 그곳까지 가는 풍경들도 좋았다.
국숫집 가는 길에 있는 나지막한 산에는 비썩마른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서있었다.
따뜻한 날씨에 보니 그 비썩마른 가지와 덤불들이 따스한 솜털같이 친근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어쩌면 삼랑진이라서 그럴지도.
길 왼편엔 4층으로 된 제법 큰 베이커리 카페도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꽤 유명한 곳인 것 같이 보였다.
어렸을 때 동네 근처에서 많이 보았던 '까시나무'도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까시나무를 보니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 나무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나무를 탱자나무로 알고 있다.
'탱자'도 내가 좋아하는 어감이다.
가는 길목 군데군데 서있는 국숫집 간판을 두 개 지나면 마침내 진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 국숫집이 떡 하고 나타난다.
위태위태해 보이는 건물이긴 하지만 여기서 영업한 지 오래되었다고 하니 외관에 비해 꽤 튼튼히 지어진 건물인 듯하다.
가게를 들어서니 국수향이 훅하고 들어온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안엔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가게는 어머니와 아들, 이렇게 두 분이서 하고 계셨는데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고 아들은 서빙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은 대여섯 개 정도로 가게 내부가 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았다.
손님들은 대부분 근처에서 일하시는 분들 같이 보였는데 다들 이 집을 이용한 지 좀 되었는지 식사하는 모습들이 자연스러웠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한쪽 벽면에는 여길 다녀간 사람들이 쓴 글들이 가득했고 그 모퉁이로 '청'인지 '진액'인지 '담금주'인지 모를 것을 판매하는 코너도 보였는데 코너 이름이 참 재밌었다.
'알바생 코너'
국수는 주수입이고 담금액은 부수입이니 꽤 센스 있는 작명이 아닌가.
냉장고엔 '김소유' 팬카페를 홍보하는 게시물도 있었다.
누군지 몰라 검색해보니 미스트롯이란 프로그램에 나왔던 분으로 트롯 가수라고 한다.
혹시나 이곳 출신인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 이 국숫집 주인분이 김소유 가수의 찐팬인가 보다.
조금 기다리니 국수가 나왔다.
고명으로는 부추와 호박을 채썰어 올리고 김가루를 둘렀다.
면은 중면이었는데 참기름을 둘러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맛은 괜찮았다.
내가 아주 좋아라 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맛이었다.
진한 육수는 아니지만 출출할 때나 뭔가 좀 허전할 때 한 그릇 하고 싶어지는 그런 맛.
집에서 잘 만든 것 같은 그런 국수였다.
다음에 또 이곳을 지난다면 또 들를것이다.
다음생엔 너로 태어나 나를 사랑해야지
사실 국수 먹은 이야기를 쓰려던 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건 국수를 기다리며 벽면에 적혀있는 낙서를 읽던 중 문득 눈에 들어오는 글 때문이다.
"다음 생엔 너로 태어나 나를 사랑해야지"
글쎄.
저 글을 적은 사람이 누구인지 나이대가 어떤지 성별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무슨 마음으로 저 말을 적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딘가의 글귀나 누군가의 노래가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문장이 주는 어떤 아련함과 슬픔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아마도 처음에 저 문장은 어떤 형태도 없이 마음속 한 구석에 조그맣게 맺혔겠지.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 세포 단위에서부터 시작했겠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슬픔과 감정이 쌓일수록 형태를 알 수 없던 작고 흐릿한 형상은 커지고 커져나가 마침내 글자가 되고 문장이 되어 머리로, 입으로, 손으로 태어났겠지.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걸 사랑하는 방법은 결국은 저것뿐이란 걸 깨달았겠지.
그리고 절망했을까?
후회했을까?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확신도 근거도 없는 생각이지만 '다음생'이란 단어에서 영원처럼 아득한 곳에 희망의 뿌리를 남겨두었다고 느껴져서이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에 희망을 남겨두고 품었던 사랑을 놓아주었겠지.
글을 잘 쓰는 작가라면 이 문장만으로도 열 권의 소설정돈 너끈히 풀어내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저 비문투성이의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냥 저 글이 하루종일 마음에 남아 결국 이렇게 몇 글자 적게 만들었을 뿐이다.
슬프고 아름답고 찬란했던 누군가의 아련했던 시간이 저 문장에 녹아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어제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시가 한 편 생각나 그 시를 마지막으로 글을 맺는다.
곰의 방문 -류시화
누군가 당신의 집 앞으로 상처 입은
곰 한 마리를 데려왔다
당신은 놀라긴 했지만 곰을 안으로 들어오게 해
가슴에 난 그믐달 모양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
지치고 혼란스런 곰은 침대에 쓰러져 누울 것이다
큰곰별자리에서 떨어진 검은 별똥별처럼
겨울잠에 아주 갇힌 영혼처럼
당신은 죽을 끓이고 강에서 연어를 잡아 올 것이다
이제 곰은 당신의 분신과 같아졌으므로
곰이 곧 당신 자신이므로
곰은 거리낌 없이 밤마다 당신의 이불 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그러나 상처가 아물면 곰을 내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곰이 그 넓은 배로 침대를 독차지하고
회색 그림자로 집 안을 지배할 테니까
당신의 친절에 익숙해진 곰은 언제까지나
나가기를 거부할 것이다
발톱으로 감정을 할퀴려 들지도 모른다
곰의 팔을 잡고 밖으로 밀어내야만 한다
문을 잠그고 단단히 빗장을 걸어야 한다
작별의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그러지 않으면 이 회전하는 행성에서 당신은
곰과 함께 평생을 한집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어느 날 당신의 집 앞에 가슴을 깊이 베인
곰 한 마리가 찾아올 것이다
큰곰별자리에서 떨어진
슬픔이라는 이름의 덩치 큰 회색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