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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07일

by 천우주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영 뻐근했다.

며칠 전 허리를 삐끗한 게 못내 말썽을 일으킨다.

이렇게 육체적 한계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땐 나이를 먹고 있음을 실감한다.

시계는 11시.


전날 새벽 3시쯤 잠들었으니 그렇게 늦게 일어난 건 아니다.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니 열기가 훅 하고 느껴진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파랗다.

오늘이 '입추'라는 게 농담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어딘가에서 가을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변화는 정점에서부터 찾아오니깐.


어제는 오늘 일어나면 가까운 계곡에 물놀이를 가볼까 하고 생각을 했었다.

올여름엔 시원한 물에 발 한 번 담가보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왠지 그것도 좀 귀찮아졌다.

허리도 아팠고 말이다.

오늘처럼 뜨겁고 컨디션까지 안좋은 날엔 가만히 집에 있는게 최고지만 갑갑한 마음에 바깥의 뜨거움을 감수하고 산책이나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우선 빨래와 설거지를 해야 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끝내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니 시계는 한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태양이 가장 뜨거운 시간대이다.

'밤에 나갈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한 번 나가기로 한 거 그냥 나가기로 했다.


밖은 예상대로 태양이 작렬하고 땀들은 기다렸다는 듯 온몸에서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분리수거장에 들러 재활용 쓰레기들을 버리고 가려는데 수거장을 정리하시던 분이 땀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 가득 웃음을 띄우고 '어디 가시냐고' 물어본다.


'허리도 아프고 날씨도 뜨겁지만 산책을 안한지 오래되어 나와봤습니다. 이런 날에도 바깥을 나가고 싶어 지는 때가 있지요. 목적지는 없지만 이 뜨거운 공기를 좀 마시다 들어올 생각입니다.'


라고 대답하기엔 너무 긴 것 같아 그냥 요 앞 슈퍼에 간다고 했다.

뭐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카레를 사기로 했으니 썩 거짓말만은 아니다.

내게 질문을 던진 아저씨는 자기는 와이프가 시켜도 이런 날은 밖에 절대 안 나간다고 한다.

하긴 이런 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밖에 나간다는 건 꽤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는 하다.


나온 지 일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가슴은 땀으로 젖었고 드러난 목덜미와 팔의 피부는 햇볕에 타들어가는 게 실감 나게 느껴진다.

'돌아갈까?'

잠깐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기왕 나온 거니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땀쯤이야 흘리면 되는 것이고 목덜미쯤이야 타면 되는 것이니.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가운 시간대, 그래도 그늘이 있어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한여름의 그늘은 색깔이 틀리다.

빛과 그림자의 선명함이 명료하다.

이것보다 날씨가 더 뜨거우면 그림자는 마치 테두리를 가진 것처럼 명확해지기도 한다.

거기에 반해 빛은 지면과 건물 등 닿는 모든 것의 색깔을 그 본질까지 바깥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좀 더 걸어가 나온 삼거리 신호등의 빨간불이 마치 이런 날은 나다니지 말라고 경고라도 보내는 것 같다.

하지만 기계의 경고 따윈 무시하기로 하고 상가에서 아이스커피를 하나 사들고 공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무척 뜨거운 날이라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았지만 세상엔 나보다 용기 있는 자들로 넘쳐났다.

온몸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타고 활기차게 달려가는 사람, 더위에 지친 표정이지만 어딘가로의 목적지를 향해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사람, 일요일이지만 일을 해야 하는지 이 더위에도 말끔하게 차려입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아저씨, 데이트를 하기엔 좀 이른 시간인 것 같지만 멋부린 차림으로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 그리고 공원 안쪽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올해 개방된 이 공원엔 작은 어린이 야외 풀장과 물을 뿜는 분수대가 있어 더위속 가까운 곳이라도 가고 싶은 이들에게 괜찮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작은 크기지만 이동식 도서관도 운영하고 있어 그늘이 있는 벤치에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몇몇 눈에 띄었다.

분수대 물놀이터와 어린이 수영장엔 즐거움이 넘쳐났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 섞여 깔깔거리고 떠들며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물에 들어가면 구분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신나는 마음이야 나이에 상관있겠는가.

공원을 지나 근처 바닷가로 가니 여기도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아주 조그만 해변을 가진 곳이라 누가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지형이 조금 험하고 해변이 좁아 가족단위가 오기엔 좀 부적절한 곳이라 그런지 이곳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있었다.

그늘이 있는 곳에 자리를 펴고 어떤 사람은 눕고 어떤 사람은 앉아 있었고 구석 쪽엔 텐트도 몇 개 보였다.

좁은 해변이라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좁은 해변에도 그늘 그늘마다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나만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게 아니었나보다.

뜨거운 날씨지만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도 제법 불어 그늘에 가만히 있으면 생각보다는 시원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와있는가 보다.


오늘 잠깐 다녀온 산책에서 아직까지 한여름은 뜨겁고 사람들은 저마다 잘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뜨거워야 여름이고 차가워야 겨울이다.

아직 여름이 뜨거운 걸 보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저런 자잘한 고민들과 문제들이 현실엔 넘쳐나지만 한여름 날씨가 당연히 뜨겁듯 고민과 문제들도 하나하나 마주하다 보면 하나씩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이 새롭게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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