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08월 03일
"모두 모두 잘 오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ㅇㅇㅇ 입니다~!!"
음조를 높여 명랑하게 말했으면 꽤나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었을 이 문장을 덤덤하게, 그렇다고 시들하지도 않게 얘기하며 가이드는 우리를 맞이했다.
수년 전 동남아시아로 관광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가이드는 덤덤하면서도 반갑게 관광객들을 맞이했고 관광이 시작된 첫날 버스 안에서 그 나라의 역사와 현재를 간략히 소개하였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그곳의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우며 사람들 또한 친절하고 순박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이곳을 남쪽 끝부터 북쪽 끝까지 배낭여행을 해 볼 것을 권장했었다.
자신도 그렇게 여행을 해봤는데 그때 보았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렇지만 좀 부정적인 이야기도 했었다.
그것은 바로 낙후된 환경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대부분의 집들은 시멘트와 판자로 대충 얼키설키 지은 집들이었으며 도로또한 제대로 포장이 된 곳이 거의 없었다.
가이드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이곳의 낙후된 점이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게 '쓰레기'라고 하였다.
제대로 된 수거 환경이 없는 그곳에선 사람들이 도로변이나 공터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한다.
그나마 도시나 유명 관광지는 조금 나은 편이나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온통 쓰레기 천지라고 얘기하였다.
관광버스를 타고 돌아본 그곳은 가이드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곳도 별 반 다를 게 없었지만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길 여기저기 아무데나 버려놓은 쓰레기들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곳만 그런 것일까?
낙후된 곳이라서?
한국은 온통 깨끗한 곳일까?
주변의 건물들이 좀 잘 지어졌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여기도 크게 다르진 않다.
한국의 견고한 건물들을 허름한 건물들로 바꿔놓는다면 아마 이곳과 그곳을 구별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름 체계적인 수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한국이 그곳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운전을 하며 시내 외곽도로로 접어드는 인터체인지를 오르면서 2차로 중앙에 당당히 놓여있는 크고 두툼한 검은색 비닐봉지를 보았다.
척 봐도 내용물이 가득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비닐봉지는 겉에서 봐도 둥글고 푸짐했고 묵직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가 훔쳐갈까봐 매듭은 또 얼마나 잘 매어놓았던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사물 또한 그렇다.
만일 그 비닐봉지가 은행 금고의 정중앙이나 카지노의 테이블 위, 또는 어떤 은밀한 요정집의 비밀방 한 켠에 있었다면 그 안엔 틀림없이 값어치 꽤나 나가는 물건이 들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그 비닐봉지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자동차 전용도로의 편도 2차로 위에 놓여있었다.
그것이 제 발로 거기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몰래 거기 두고 가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제우스 신이라면 그럴만도 하겠다.
헤라가 부탁한 분리수거를 바람을 피우느라 깜빡하고선 그걸 들키지 않으려 몰래 지상에다 버려두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은 사람 사는 곳.
바로 우리들 인간들만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 아닌가.
아마 어딘가의 누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그 쓰레기를 고이 그곳에 두고 갔을 것이다.
봉지가 터지지 않을 걸로 보아선 두고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운전을 하며 도로를 다니다 보면 그런 쓰레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건 아주 쉽게 볼 수 있으며 한적한 곳에선 종이컵, 캔, 일회용 용기를 버리는 것도 한 번씩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통행이 좀 뜸하다 싶은 도로가엔 어김없이 형체모를 쓰레기들이 정말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다.
심지어 국도의 한적한 곳에 가면 가구나 티비, 그 밖의 가전, 가구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정기적으로 도로를 청소하고 있을 것인데도 그런 쓰레기들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 버리는 사람도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본인이 꽤 부끄러워질 것이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적한곳에 쓰레기를 두고 갈리 없으니.
부끄럽지만 나도 쓰레기를 버렸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며칠 전에도 다 먹은 테이크 아웃컵을 정류장 한 켠에 다소곳이 몰래 두고 왔다.
누가 치워줄 거라 생각해서이다.
그리고 그 '누가'가 '나'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이다.
집에 쓰레기통이 없는 것도 아니고 종량제 봉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재활용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그때 차 안이 좀 복잡했고 커피를 하나 더 사 먹으려는데 빈 컵이 컵홀더에 다 차있어 이걸 어디다 두지? 하는 생각에 '에라 모르겠다'하고 차를 세우곤 정류장에 빈 컵을 두고 온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그 행동에 대해 사과드리며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여름철이 되고 관광철이 되니 뉴스나 기사에서 관광지들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는 표현이 자주 보인다.
비단 여름철뿐이랴.
사람들이 지나간 곳은 흔적이 남는다.
현대사회는 세분화된 사회이기에 각종의 직업과 각종의 역할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선 사랑들의 버려진 흔적을 정리하는 청소의 역할도 있다.
그렇지만 그 역할이란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무심코 쓰레기를 버릴 수도 있는 것이고 의도치 않게 쓰레기를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아놓은 쓰레기라던지 가정의 쓰레기들로 확장된다면 그건 또 얘기가 달라진다.
도로변이나 관광지, 인적이 드문 산행길 같은 곳에서 쓰레기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걸 보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불쾌한 기분이 들 것이다.(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조차도!!)
그리고 그런 기분이 들기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것이 잘못된 일이고 부끄러운 일임을 우리는 은연중에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선진 시민의식이나 사람들의 행실에 대한 어떤 비판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간 자리의 흔적이 쓰레기라면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쓰는 글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가 향기가 남게 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악취가 남지 않게 하긴 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