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시작
8월의 시작은 후덥지근한 더위와 함께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어둑어둑했고 구름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서서히 땅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대기는 습기를 한껏 머금은 열기로 꽉 들어차 숨을 쉴 때마다 폐가 마치 묵직한 스펀지가 된 듯 했다.
문득 물 먹는 하마의 고충이 공감되었다.
하마는 웃고 있었지만 웃는게 아니었다.
축축한 대기와 오락가락 쏟아지는 비,
방금 샤워를 마쳤지만 곧바로 끈적해지는 목과 팔,
눈을 감으면 여기가 동남아시아의 우기속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그런 날,
그래도 기분이 우울하거나 나쁘지는 않다.
8월이지 않는가.
8월
12개의 달 중 가장 뜨겁고 정열적인 달.
여름이 마지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휴가가 시작되며, 더위를 피해 더위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달!!
8월의 열기와 열정을 감히 어떤 달이 넘볼 수 있을까?
8월은 신이 축제를 위해 계획한 달이 분명하다.
가슴속 뜨거움을 뜨거움속에 내던지며 환성과 환호와 함께 온 몸을 그 열정에 맡기는 축제 말이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바다로 달려 나간다 생각하지만 실은 8월의 붉은 열정에 저도 모르게 물들어 1년 내내 쌓아두었던 자신의 가슴속 열기를 마음껏 뿜어내려 바깥으로 바깥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비록 올해의 8월은 잔뜩 흐린 날과 오락가락하며 쏟아지는 비로 시작했지만
8월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8월이 시작된 오늘, 매미 울음도 확연히 달라졌다.
어제까진 그저 맴맴 거리는 수준의 소리였지만 이제 그 소리는 크고 우렁차며, 어딘지 모르게 독이 잔뜩 올라있다.
여름의 끝이 곧 올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곧 여름이 지나갈 것임을, 그리고 자신들의 시대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울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힘을 다해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로 모든 힘을 다해 세상을 향해 울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게 살아있음을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 있고 살아 있다.
끝이 얼마 안남았지만
그 끝이 오기까지
나는 여전히 울며 노래하며
살아 있을 것이다
8월이다.
열두 달 중 가장 찬란하고 뜨거운 계절,
그리고 그 격정이 온화함으로 바뀌는 계절.
8월이 찬란한건 그 속에 어느 달보다 뜨거운 열정을 품고있어서만은 아니다.
8월의 절반은 격정의 시간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을 몰고 오는 계절이다.
사랑스럽고 미우며, 화끈하면서 차가우며, 세상없을 추억을 만들기도 하지만 꼭 그만큼의 아련함도 남기는 계절.
사랑스럽지만 사랑할 수 없는,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계절이 바로 8월이다.
이제, 오늘
8월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