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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봄날의 밤

2023년 02월 25일

by 천우주

저녁부터 열어놓은 베란다와 주방창에서 바람이 잠깐잠깐 불어든다.

어제만 해도 봄날의 날씨처럼 따뜻했건만 오늘은 바람이 제법 차다.

그렇지만 '싫은 차가움'은 아니다.

봄날의 차가움은 겨울의 차가움과는 또 좀 다른 것 같다.

춥긴 하지만 그렇다고 웅크리고 싶은 그런 추위는 아니다.

차가움 속에 왠지 즐거움이 묻어있는 것 같은 그런 차가움이다.

차갑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노라면 추워도 기분은 좋아진다.

바깥에선 때때로 지나다니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지만 주말인데도 오늘은 꽤 조용한 편이다.

야식을 배달하러 다니는 오토바이의 소리도 가끔밖에 안 들린다.

날씨가 추워져서려나?


물을 끓여 예전에 얻었던 말린 여주를 넣고 차 한잔을 마셔본다.

뜨거운 물의 온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 뱃속으로 퍼지는 게 느껴진다.

차가움과 따뜻함.

어울리지 않는 둘을 같이 붙여놓으니 참 좋다.

말린 여주가 쓴맛이라고 생각했는데 먹어보니 쓴 맛은 적고 살짝 달큼하고 삼삼한 맛이다.

그런데 단맛이라니...

말린 것들은 으레 단맛이 우러나는 건가?


예전 같으면 커피를 마셨겠지만 며칠 전부터 편안한 잠을 위해 밤에는 카페인을 멀리하기로해 대안으로 여주차를 마시고 있다.

카페인을 잘 분해하는 체질이라 섭취와 상관없이 잠드는 데는 별문제가 없지만 자다가 깨는 게 문제다.

꼭 두 번 정도는 화장실 때문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도 습관이 되어 불편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잠을 잘 자는 것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앞으로는 자기 전 카페인 섭취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예전에는 일부러 잠을 멀리한 적도 있었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려고 노력했고 그러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늦게 잠드는 것이다.

새벽 4~5시 정도에 자서 8시 정도에 강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그땐 마음만 조급했던 것 같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하지만 정작 뭘 한건 없었다.

그리고 어떤 무엇이 되지도 못했다.

단지 나만 괴롭혔을 뿐이다.

무엇이 되지 못하니 나라도 괴롭힌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늦게 자는 습관이 남아 여전히 잠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잠을 좀 잘 자보기로 결심하였다.


아직도 나는 내가 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진 않는다.

그래봤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뭔지 평생을 모르더라도 나로 태어났으니 나로서 살아갈 수밖에.

그리고 평생 그걸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무해한 인간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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