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15일
2주 전인가 친구와 신년 운세를 보러 다녀왔다.
나는 사주나 운세를 일종의 '기질'이라 보기에 거기에 어떤 신묘함이 깃들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굳이 믿음의 정도를 얘기하자면 혈액형이나 mbti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사상체질 정도...?
그래도 운세를 보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분들에게 어떤 특별한 '감'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람을 많이 상대해서 발달한 후천적인 것이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것이든 보통의 사람들 보다는 좀 '특별한 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감이란 사람의 과거와 미래가 쫙 펼쳐 보이는 어떤 초자연적 감이 아니라 마주 앉은 상대의 인상과 자세등에서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순간적으로 파악해 그걸 단서로 과거와 미래를 단박에 유추해 내는 일종의 뇌 시스템을 말한다(그런 게 있는진 모르겠지만...).
마치 셜록홈즈가 빙의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운세를 보러 갈 때엔 약간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과연 그 '특별한 감'으로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기대가 들기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때론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 것 같습니까?' 나 '내 앞날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같은 질문을 받는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걸 경험하는 것이니 운세를 보러 갈 때 얼마간의 기대를 가지게 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그렇다고 일부러 운세를 보러 다닐 만큼의 마음은 없다.
이번에 운세를 보러 가게 된 것도 진작부터 친구 녀석이 신년운세 타령을 한 것도 있고 그동안 내가 이 녀석에게 여러모로 도움 받은 것도 있고 해서 이참에 친구 운세도 보게 해줄겸해 비용은 내가 부담하기로 하고 겸사겸사 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용하다는(내 입장에선 감이 좋은) 곳을 수소문해 2주 전 신년운세를 보러 다녀왔던 것이다.
이번에 간 곳은 내가 가 본 곳들과는 좀 다른 곳이었다.
살면서 운세를 보러 간 게 몇 번 되지는 않지만 그곳이 점집이든 신내림을 받은 곳이든 사주는 기본으로 받아 적었었는데 이번에 간 곳은 그런 게 없었다.
심지어 타로를 보는 곳에서도 사주를 받아 적었었다.
하지만 이곳은 그저 나이만 물어볼 뿐 다른 질문은 없었다.
운세를 보는 곳도 그냥 일반 가정집이었다.
일반 가정집에서 운세를 보는 곳이야 많지만 그곳은 간판도 전혀 없었고 단층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작은 정원이 딸린 제법 넓은 주택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그냥 가정집과 똑같았다.
아마도 입소문으로 다들 찾아오는 듯했다.
집으로 들어서니 50대 중반 정도의 수수하지만 좀 깐깐할 것 같은 인상에 검은 정장 바지와 화이트 셔츠를 입은 마치 회사원 스타일의 남성분이 맞이해 주셨는데 처음엔 사무를 보는 분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 분이 바로 운세를 보시는 분이었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방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역시나 감을 가진 분 답게 분위기가 변했다.
방은 일반 가정과 똑같았지만 한쪽 벽면에 신상을 모셔놓은 제단이 차려져 있어 여기가 운세를 보는 곳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나이를 얘기하자 나에 대한 얘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성격은 어떻고 부모님은 어떻고 가족은 어떻고 언제가 좋고 언제가 나쁘고 어떤 게 맞고 어떤 게 맞지 않는지 일사천리로 나왔다.
마치 내 이름을 컴퓨터에 치고 엔터키를 누르니 나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뜨며 자동 출력되는 것 같았다.
맞는 것도 아닌 것도 틀린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해 그렇게 술술 얘기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10분 정도 얘기했을까?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했지만 뭐가 궁금해서 찾아간 게 아니니 막상 물어볼게 생각나지 않았다.
상담시간이 30분이라 10분은 너무 빨랐는지 그분이 몇 가지 부연 설명을 더하셨고 나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노후를 물어보며 시간을 좀 더 보냈다.
방을 나서니 들어가서 15분이 조금 넘게 있었다는 걸 알았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15분에 요약된 것이다.
이번에 운세를 보러 다녀오면서 느낀 건 많은 사람들이 평탄한 삶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큰 굴곡 없는 삶.
나쁜 일은 되도록 회피하고 좋은 일은 최대한 받아들이는 삶.
그러면서 조금씩 혹은 순간적으로 삶의 질과 행복이 상승하는 삶.
마치 우량 기업의 장기 주식 차트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지나고 보면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이 아니기도 좋은 일이 꼭 좋은 일이 아니기도 하다.
고통과 상처를 지날 땐 괴롭고 슬프다가도 어느샌가 그것들이 내 삶에 힘과 자양분으로 변해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굴곡이 그리 나쁜 것일까?
실패와 좌절이 꼭 피해야만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부나 명예, 성공을 꿈꾸지만 바닥을 딛어보지 않고 원하는 걸 이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성공만 이룬 사람이 있을까?
만일 있다면 그것이 성공일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주위에서 보기엔 그 사람이 성공한 걸로 보일지라도 분명 스스로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실패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성공을 하겠는가.
굴곡이 없다는 건 변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가면 사람이 보수적이고 편협해진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마 변화가 점점 줄어들어서가 아닐까 한다.
소위 말하는 '꼰대'(나는 이 단어를 좋아하진 않지만)가 되어가는 것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한다.
두려움이 점점 깊어져 과거의 생각과 행동만을 고수한다면 주위로부터 점점 고립되어 가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날까지 삶에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들을 찾아 기꺼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헤세는 유리알 유희에서 이렇게 썼다.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알 속의 세계에 감사하며 미련 없이 알을 깨고 다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세계 역시 다시 깨고 날아올라야 할 것이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편협과 두려움은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안에도 많은 아집과 미련과 두려움이 살아 있으니.
운세가 맞든 틀리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잘 받아들이고 잘 헤쳐나가며 나를 데리고 온전히 잘 살아가는게 중요한 것이다.
잠이 쏟아지고 있다.
8시간 잠자기를 한 달쯤 하고 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이 시간까지 깨어 있으니 머리가 이미 반쯤 자고 있다.
그래도 오늘의 목표인 글쓰기를 해서 좋긴 한데 글 중간부턴 뭐라 적었는지 헷갈린다.
두서없이 적었더라도 이해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