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17일
어제 쓴 '신년운세'의 글이 오늘 내내 마음에 걸렸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더 그랬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너무 잠이 올 때 썼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이 뒤섞이고 혼잡해져 굉장히 애매모호하며 딱딱해져 버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의 다른 글들이 가독성이 좋고 일목요연하지는 않지만... 사실 비슷비슷하다)
그래서 앞으론 기분에 따라 글을 써서 올리지 않기로 했다.
쓰더라도 '몇 번 더 보고 하루라도 지난 뒤 올리자'라고 다짐했던 것이다.
어제의 '신년운세'글도 점심때쯤 다시 읽고 나서 지울까 잠시 고민했었다.
그래도 그 녀석은 그냥 두기로 했다.
어쨌든 올려버린 글이니 나의 부끄러움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냥 두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부끄러움의 재료야 차고 넘치니 그중에 하나 더 보탠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런데 이게 밤이 되니 생각이 또 달라진다.
무슨 요술상자나 미립자도 아니고 생각이란 놈이 제멋대로 퀀텀점프를 한다.
그 생각이란 게 이런 것이다
'삶이란 게 깨지고 또 깨지는 거구나'
좀 달리 말하면 늘 최상의 상태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진하고 정진해 도의 궁극에 이르러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평온함과 고요함을 의복처럼 두른 뒤 사람들을 두루 널리 이롭게 하는 것도 좋지만 고대로부터 인간사에서 그만한 인물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싯다르타나 그리스도처럼 일찍이 영성을 깨쳐 구원의 손길을 널리 퍼트린이가 인간의 역사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런 성인의 반열을 감히 올려다볼 처지도 되지 않는 주변 흔한 '풍경 속 행인 35' 같은 사람이다.
그저 나 같은 범인은 그저 행동하고 깨지고 또 깨지면서 살뿐이다.
잘못해 놓고 '아! 이게 아니지'하고 알아차리는 것만도 꽤나 대견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존재이더라도 이 깨지고 깨진다는 게 생각해 보면 참 재미있고 기분 좋은 일이다.
깨지고 다시 붙이고, 까먹었다 '아뿔싸'하며 다시 상기해 내는 게 즐겁다.
몰랐던걸 알아가는 게 즐겁고 잊었던걸 다시 떠올리는 게 유쾌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게 재밌다.
대부분의 시간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까먹고 어리석게 지내지만 그 속에서 짧게나마 그런 즐거움의 순간을 갖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산 봉우리라도 넘으면 다시 내리막이지 뭐가 있겠는가.
나는 그렇게 산 봉우리를 넘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갔다 길을 잃기도 하고 배고파 쉬기도 하고 넘어져 다치기도 하며 다시 눈앞에 있는 산 봉우리로 걸어가는 보통의 사람이다.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할 수 밖에.
위인이나 성인은 아니지만 걸어갈 순 있으니.
또 어딘가에서 깨지고 깨지다 보면 좀 더 산을 잘 오르는 걸 배울 수도 있겠지.
그래도 산 너머엔 다시 산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내려갔다 올라갈 것이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묵혀두었다 꺼내는 묵은지 같은 글이 아니라 갓담은 김장김치 같은 글을 써 올린다.
맛있느냐 아니냐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입에는 맞다.
그리고 브런치의 자기소개에 '귀여운 40대'를 추가했다.
오늘따라 왠지 내가 좀 귀여운 것 같아서.
(실제론 아닙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