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3월 29일
나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꽃들이 한창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활짝 핀 벚꽃을 만날 수 있고 개나리도 목련도 볼 수 있다.
이제 곧 벚꽃들의 연분홍 춤사위가 흐드러지게 나부끼고 나면 진달래와 영산홍이 더욱 짙은 붉은색으로 피어나고 곧 빨강과 가장 어울리는 꽃인 장미가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꽃들이 피어나고 지며 세상은 짙은 초록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렇게 꽃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피어야 할 때를 알고 또 사라져야 할 때를 안다.
오직 삶에만 충실하다는 것이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어렸을 때 우주엔 동서남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었다.
중력에 묶여 종과 횡으로만 움직였던 나에게 그 사실은 꽤 혼란을 주었다.
2차원 지도 위에 2차원으로 표시된 동서남북의 화살표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지구는 둥글지만 그 위에 사는 나는 평평한 2차원에 익숙했다.
북쪽은 위쪽, 남쪽은 아래쪽, 동쪽은 오른쪽, 서쪽은 왼쪽.
올라가면 북쪽이고 내려가면 남쪽.
하지만 그것이 머리 위로 올라가고 발 밑으로 내려간다는 의미가 아니란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앞과 뒤가 더 의미에 가까울 것이지만 그래도 위쪽은 북쪽, 아래는 남쪽이 내겐 익숙해 머리 위와 발아래는 방향에서 종종 잊혀지곤 했다.
이렇게 위와 아래도 때론 헷갈리는데 우주 공간이라니!!
그리고 그곳에선 방향마저 무의미하다니!!!
거기다 더욱 놀라운 건 심지어 위아래 마저 없다니!!!!
동서남북과 위아래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우주를 상상하는 것은 내겐 실로 벅찼다.
그것은 나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우주를 상상 할때면 나는 어김없이 머릿속에서 방향을 상실하고 우주의 미아가 되곤 했다.
우주 비행사들은 어떻게 이런 곳을 가로질러 달에 착륙했을까?
또 어떻게 저 멀리 금성과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고 천체 망원경을 통해 수많은 별들을 관찰하는 걸까?
거기엔 내가 배워서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의 실패와 도전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실패를 겪고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인간인 내가 봐도 인간들의 끈기와 집념은 정녕 대단하다.
방향조차 없는 우주를 탐험하다니!!
가끔은 삶도 그런 것 같다.
위아래와 동서남북이 아무 의미 없는 우주 공간.
운 좋게 목적지를 발견했다고 해도 마치 행성처럼 그 목적지는 자신만의 궤도를 가지고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우리는 텅 빈 우주 공간에 홀로 남아 망연자실한다.
우주복에 남은 산소는 '수명'이란 이름의 용량이 불확실한 연료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얼마를 지나왔는지 얼마를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의 내가 머리 위를 가야 하는지 발아래로 가야 하는지 앞인지 뒤인지 왼편인지 오른편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내게 주어진 자유는 오직 어디든 '가는 것' 뿐.
수명이라는 산소가 다할 때까지.
그리고 방향을 잃은 자유는 혼돈과 공포와 파멸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우주의 미아로 수명이란 연료가 다할 때까지 혼돈과 공포를 안고 파멸로 미끄러져 가야만 할까?
아니,
우주에서 방향을 정하는 길은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거대해지는 것.
그렇게 우주만큼 거대해져 별과 은하를 품에 넣으면 비로소 어느 별을 어떻게 갈지 보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목표에 이르는 건 얼마만큼 갔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커졌는가' 일지도.
수많은 경험과 실패의 반복들이 내 품에 비집고 들어와 나를 부풀리고 때론 터트려도 다시 품속을 채워 커져가는 것일지도.
그렇다면 우주에서 길을 잃었을 땐 그냥 살아내는 것이 길을 찾는 일일지도.
저 멀리 별들의 황홀한 반짝임을 보고 어느 날은 운 좋게 혜성의 꼬리도 구경하며 때마침 내 주위로 궤도를 돌며 가는 행성에 인사하고 어떤 때는 별들의 거친 잔해 속을 힘겹게 지나가며 살아내는 일일지도.
그렇게 우주 속을 살아내며 자신 역시 우주와 같이 조금씩 커져가는 것일지도.
마치 피고 지는 때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훌륭하게 피고 지는 꽃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