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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3일 오후 3시의 햇볕은 더없이 따뜻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by 천우주

4월 3일 일요일의 오전 10시,

핸드폰의 전화벨 소리에 억지로 눈을 떴다.

요즘 되도록 8시간의 수면 시간을 지키려고 하는 터라 오늘은 오후 1시에 일어날 계획이었다.

전날 오랜만에 잡힌 주말 약속으로 늦게까지 뜬 눈으로 놀다 바깥이 살살 밝을락 말락 머뭇거리던 새벽 5시에 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화건 사람은 내 사정 따위야 안중에도 없다는 듯 끊지도 않고 계속 벨을 울려댔다.

하기사 그 사람이야 내가 새벽에 잠들었는지 아침에 잠들었는지 알턱이 없으니 알아서 전화를 좀 자제해줬으면 하는 건 내 바람일 뿐이다.

'핸드폰을 끄고 잘걸'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후회일 뿐.


'급한 전화는 아닐 거야'


다시 눈을 감고 몸은 침대에 딱 붙인 채 속으로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때 드디어 전화벨 소리가 멎었고 나는 다시 즐겁게 기상 예정 시간인 오후 1시까지 잠을 자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몸은 침대에 딱 붙인 자세 그대로였지만 이미 잠은 달아나 버렸고 다시 잠들기는 틀렸다는 걸.


나는 거실로 나와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 전날 늦게까지 있었던 흔적들을 하나하나 치워나갔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고 재활용 쓰레기들을 분리하여 수거장에 버렸다.

청소와 빨래가 끝나고 집이 어수선한 상태에서 '덜' 어수선한 상태가 되자 어느새 오후가 되어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 뭐라도 하나 사 먹을까 하는 생각에 햇볕도 쬐고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섰다.


날씨는 맑았고 햇볕은 따뜻했다.

그야말로 봄날이었다.

연분홍 벚꽃 잎은 하늘하늘 떨어져 내리고 뒷산 저편엔 어느새 연분홍색과 더불어 진분홍색이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따뜻한 햇볕이 온 땅을 다 덮고 있었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등 뒤에서 목을 타고 전해오는 햇볕의 따뜻함이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 찌르르하고 느껴졌다.

따뜻함이 가장 기분 좋게 닿는 곳은 목덜미 바로 아래였다.

어깨와 어깨사이, 고개를 숙이면 뼈가 볼록 튀어나오는 곳, 경추와 흉추가 만나는 지점쯤 되는 그곳에 더없이 따뜻한 햇볕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따뜻함은 목덜미 아래에 내려온 뒤 떠나지 않고 양 어깨와 등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목으로 떨어져 내린 햇볕은 목덜미를 기점으로 해서 마치 다이아몬드 모양처럼, 십자가 모양처럼 몸을 타고 흘렀다.

문득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였다.


2023년 4월 3일 일요일 오후 3시,

더도 덜도 아닌 딱 맞는 따뜻함이 내 목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 시간.

그날 그 시간의 따뜻함은 따뜻함 그 자체였다.


더 이상 따뜻할 수도 없었고 더 이상 따뜻하지 않을 수도 없는, 마치 따뜻함의 신이 있어 내게로 찾아 들어온 것 같은 그런 따뜻함.

후회나 미련, 걱정과 불안, 희망과 열정이 모두 그 따뜻함 속에 녹아버리고 이대로 세상이 끝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대로 내가 사라져도 괜찮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당연히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은 세상도 나도 잘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되도록 오래 잘 살 생각이기도 하다. 사실 한 300살 정도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떨어지는 벚꽃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있었고 땅에는 깨끗하게 내려앉은 벚꽃잎들이 흩어져 있었다.

운동장엔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었고 길거리엔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장을 보러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집에 앉아 티비를 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슬픈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기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사람은 아주 많았을 것이다.

그중엔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문득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어떤 사람이라도 내가 존재하는 것에 세포 하나만큼이라도 관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는 원래 '신'이었으며 지금은 단지 '신' 그 자체에서 모두 떨어져 나온 모습일지도 모른다.

빅뱅으로 우주에 물질이 흩뿌려지고 지구에 생명이 스며들었듯 우리의 근원도 결국 그 하나에서 나오고 다시 하나로 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연민'을 가져야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였으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햇볕이 더없이 따뜻했던 2023년 4월 3일 일요일의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

나는 햇볕의 따뜻함을 배터리처럼 몸에 품고 집으로 돌아오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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