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5월 07일

마음을 내다

by 천우주

다소 느슨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마음먹은 일들을 뒷전으로 미뤄놓고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나태한 날들을 지낸다.

'적당히'라는 게 어느 정돈지 딱 잘라 규정할 순 없지만 게으름과 나태함이 나를 잡아먹는 수준까진 이르지 않는 정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러 가지로 마음도 내어보고 있다.

글 쓰는 것이나, 책을 읽는 것이나, 지식을 쌓는 것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 운동을 하는 것, 잠을 잘 자는 것 등, 해오고 있는 일들이나 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이것저것 마음을 내어본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이건 이렇게 하면 별로니깐 다르게 한 번 해봐야겠다.

이걸 이렇게 하면 좀 더 괜찮을 것 같으니 이렇게 해봐야지.

오 이건 새로운데. 이거 한 번 해봐야겠다.


그렇지만 하는 마음을 내면 하지 않는 마음도 따라온다.


오늘은 이걸 꼭 해봐야지.

아니다.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하자.

저녁 식사 후엔 아무것도 안 먹을 거야.

아.. 근데 뭔가 좀 출출한데.... 조금만 먹어볼까?

글은 매일 써야 하는 거야.

에이 오늘은 좀 피곤하니깐 하루는 그냥 넘기자.

아.. 운동해야 되는데...

그거 뭐 좀 내일해도 괜찮잖아. 내일해 내일.

앗! 잠잘 시간이다.

괜찮아 괜찮아 30분 정도 늦게 자면 어때. 내일 좀 푹 자면 되지.


이렇게 발심을 따라 늘 반대의 마음도 같이 온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면 되는 이 간단한 원리가 내겐 참 어렵기만 하다.

그냥 스위치를 켜면 탁하고 불이 들어오듯 모든 게 그렇게 단순하면 좋으련만.

그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사는 재미이기도 하겠지.

스위치 켜듯 뭐든지 탁탁 이뤄지기만 하면 그 속에서 어떤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


시작이 반이라고 말한다.

마음을 내는 것. 즉 발심(發心)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발심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음만으론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내 의지와 힘과 노력으로 두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가고 싶다는 생각만으론 어디에도 이를 수 없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면 최소한 공항까지는 가야 하는 것이다.

설사 비행기를 타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하나님도 필시 생각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진 않았을 것이다.

'되어라' 하니 되고 '살아라' 하니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빅뱅 같은 폭발도 좀 일으키고 우주 공간도 좀 널리 널리 확장시키고 여러 가지 물질들도 좀 뿌려놓고 혼합도 해가면서 이런저런 환경을 만드는 수고를 하였을 것이다.

생각과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천지창조는 적어도 내 상상력으론 생각하지 못하겠다.


행동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발심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고 하지는 않더라도 걸음을 걷기 위해선 뇌가 몸의 각각에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시선은 어떻게 처리하고 팔은 어떻게 흔들며 허리와 골반은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어떻게 각각의 근육들이 수축하고 이완하는지 같은 다단하고 복잡한 명령들을 뇌가 내려주어야 비로소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 누구나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겪으며 서고 걷는 법을 익혔다.

그때 우리가 몇 번의 실패에 포기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일 순 없을 것이다.

아직도 눕고 기면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시절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별다른 의식 없이도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좀 과한 비유이긴 해도 마음을 내는 것도 그럴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만큼 충분히 마음을 내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잘못된 방향으로 마음을 내어서 일수도 있다.

다리를 움직여야 하는데 아무 상관없는 콧구멍을 움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 백 년을 내어봐야 헛수고다.


그렇다면 올바른 마음을 행동이 나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내는 게 중요할 것이다.

거기엔 적절한 자극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게 올바른 마음일까?

내가 내는 마음이 콧구멍을 움직이는 마음인지 손가락을 움직이는 마음인지 다리를 움직이는 마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글쎄다.

사실 난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떻게 마음을 내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좀 잘못된 방식으로 마음을 내고 있다는 게 아닐까?

바른 마음을 내는 걸 찾기 위해선 여러 번의 실패를 겪어보고 그중에서 행동으로 향할 수 있는 가장 맞는 마음을 찾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맞는지 아닌지는 해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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