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15일
중학교 이전 시절의 것들은 이미 오래전 분실했지만 그 이후의 일기들과 편지는 여러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끈질기게 지켜 온 나름의 삶의 흔적이었습니다.
그 흔적들을 모두 정리하였습니다.
과거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잊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오랫동안 간직했던 그것들이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가지고 있는 짐들도 줄이고 싶었구요.
그래서 기록을 기억에게 넘겨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록들을 버리기 전 그간에 쓴 것들을 읽어보면서 몇 번이나 피식거렸는지 모릅니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묘사, 공부의 괴로움, 학우들과의 문제, 가족 간의 문제 등 나름 치열한 삶의 모습들이 그때의 문장으로 생생히 적혀 있었지만 지나고 읽어보니 왜 그렇게 웃기고 귀엽던지요.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읽어보니 나도 참 평범한 시절들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피식 한 번 웃고 끝나지만 그래도 당시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나의 이중성에 대해 괴로워했고 어쩔 수 없는 문제들에 답답해했고 막연한 미래에 불안해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어찌 그날들을 지나왔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뭔가를 이루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버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게 참 다행입니다.
혼자의 힘으로 이겨낸 건 아닙니다.
많은 이의 사랑과 도움으로 나는 나를 버리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나는 내가 만든 그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지나간 기록들을 모두 정리했으니 다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하려고 했던 것을 하나씩 해나가고 되고자 했던 것에 한 발씩 다가가려 합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해보려 합니다.
잘 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하니씩, 별생각 없이 하나씩 그렇게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