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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Nov 04. 2023

스스스스

2023년 11월 03일 가을님 오시다


스스스스스~~~



아침,

문득 들려오는 기분 좋은 바람소리에 시선이 저절로 풍경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엔 어느새 가을빛 알록함이 온통 넘실거렸고 입속에선 나지막한 감탄이 절로 새어 나왔습니다.

바람은, 알록하게 물든 낙엽 사이를 스스스 소리 내어 넘나들며 그 고운 빛깔의 잎새들을 땅으로 땅으로 떨구어 트렸고, 떨어진 잎들을 서로서로 모아주어 세상을 곱게곱게 덮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님이 오셨습니다.

모두에게 꼭 같이 오시는 건 아닌지라 날짜를 일관되게 특정하진 못하지만 저에게는 스스스스 바람 불어 낙엽들을 흩날리던, 바로 오늘 11월 03일이 2023년의 가을님이 오신 날입니다.


가을의 알록한 빛깔은 봄의 알록한 빛깔과는 또 다릅니다. 봄의 빛깔엔 기쁨과 젊음과 생명이 깃들어 있다면 가을의 빛깔엔 평화와 여유와 성숙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계절은 이제 휴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화려함을 지나 가을은 이제 완전한 휴식으로 들어가는 겨울을 대비해 채비를 합니다. 이제 겨울이 오면 나무들은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떨구어내곤 깊고 고요한 휴식을 취할 것입니다.


모든 활동의 마지막은 '쉼'입니다.

모든 하루의 마지막은 '잠'입니다.

모든 여행의 종착지는 '집'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결국엔 멈춰서 쉬게 됩니다. 멈춰 선 그곳에서 조용한 평화와 휴식을 취합니다. 쉬지 않는다면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쉴 수 없습니다. 가지 않는다면 돌아올 수 없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떠날 수가 없습니다.

삶은 움직임과 휴식의 반복이지만 그 끝은 결국 '쉼'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래서 '쉼'은 또한 평화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죽음'도 또 하나의 '쉼'이란 생각이 듭니다. 필멸에서 '멸'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쉬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 '쉼'은 깊고도 고요한 완전한 '쉼'입니다.

누구나 각자의 최선으로 생을 살아내었으니 멈춰서 머무르는 '죽음'이 완전한 '쉼'이 아니라면 또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생을 다해 살아낸 자에게 있어 완전한 평화와 휴식을 제공하는 선물일 것입니다.

삶의 끝. 너무나도 확실한 삶의 끝인 죽음은 또한 '집'입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마지막엔 결국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 삶이라는 여행의 끝 역시 집일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은 또한 집입니다. 우리는 집에서 나와 세상을 여행하고 떠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요히 평화 속에 휴식을 취하다 언젠가 우주의 인연이 불꽃을 일으키면 다시 깨어나 먼 여행을 떠나겠지요.


2023년 11월 03일의 아침,

스스스스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문득 풍경을 바라보며 가을을 알아챈 나는, 오늘 하루 이런 생각들을 했었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며, 그곳에서 완전한 평화 속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고. 꽃과 잎을 지나 낙엽이 되어가는 나무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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