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08일
나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
어리석은 짓에도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모르고 하는 어리석은 짓이고, 다른 하나는 알면서 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전자의 경우 모르고 한 거니 어느 정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지만 문제는 후자다.
어리석은 짓인 줄 알면 안 하는 게 정상적 성인일진대, 나는 정상성에 벗어나는 인간인지 뻔히 알면서도 어리석은 짓을 하고야 만다.
왜 그러는 걸까? 어리석은 짓에도 총량이 있어서일까?
'총량'을 언급하는 이유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마음 이면에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있어서다.
제법 만취한 상황에서 '딱 한 잔 더'를 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여기서 술을 더 마신다면 분명 내일은 숙취로 하루종일 고생할 것이 뻔히 눈에 보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술을 더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계속 든다.
술이 아직 내 마음을 다 채우지 못한 것이다.
어리석은 짓을 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이것을 하면 분명 후회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기어코 하고야 만다.
충동에 못 이긴 것이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내 안의 어리석음 통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아서이다.
정말 어리석은 짓에도 총량이 있을까?
그래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하고 모두 다 해버려 내 안의 어리석음 통이 완전히 채워진다면 그때는 더 이상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게 될까?
삶에서 저지르는 실수들과 잘못들을 모두 다 하고 나면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학창 시절 우리 집은 방 하나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학교 성적이 좀 더 나아지길 늘 기대하셨었다.
나 역시 그러고 싶었지만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있는 하나의 방에선 불가능하였다.
내게 있어 독립되지 않은 방은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나만의 방을 원했고 나만의 책상을 원했었다.
만일 내게 독립된 나의 방과 멋진 책상이 있다면 거뜬히 상위권에 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고3 무렵에 알았다.
당시 대입 공부를 위해 나는 어렵사리 독서실 3개월치를 등록했고 열심히, 그리고 마음껏 공부할 생각에 부풀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만의 책상과 나만의 공간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독서실을 등록한 3개월간 한 것이라곤 소설책을 읽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 그게 다였다.
공부를 하긴 했었다.
그것이 언제냐면 잠을 충분히 자 더 이상 잠이 오지 않거나 소설을 오래 읽어 이제는 진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천 번쯤 왔을 때 그때 잠시 하는 게 공부의 다였다.
그때 알았다. 내 방, 내 책상이 공부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걸.
나는 그저 공부하기가 싫었을 뿐 내 방, 내 책상은 핑계였던 것이란 걸.
깨달음은 있었지만 그것이 지속되진 않았다.
나는 아직도 '내 방, 내 책상' 같은 핑곗거리를 찾아내기 바쁘다.
이것도 나의 어리석은 짓 중 하나이다.
알고 하는 어리석은 짓이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언젠간 끝이 있길 바란다.
나는 어리석음에도 총량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어리석은 짓을 하고 하고 또 해서 언젠가 어리석음 통이 꽉 차버려 그만두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