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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May 10. 2024

사람도 고칠 수 있나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냐



근원지가 어딘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말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

몇 달 전 만났던 지인도 주변 사람들의 몰지각과 몰이해에 치를 떨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며 넋두리를 했었다.

최초의 발화자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진 없지만 내가 들은바로 그 뜻어림잡아 본다면 '타인을 바꾸려는 무의미한 행동이니 시간에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라'말인 듯싶다.

어떻게 보면 참 좋은 뜻이다.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게 나쁜 일일순 없으니.

그런데 정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닐까? 고쳐질 수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고칠 수 없다'라는 전제가 참이 되려면 세상 누구도 변할 수 없어야 한다.

거기엔 '나'도 포함된다.

타인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게 맞는 말이라면 나 또한 어떻게 해도 고칠 수 없어야 한다.

'타인을 바꾸려는 무의미한 행동을 그만두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행복을 찾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사람이 고쳐지지 않는 게 맞다면 '나'는 스스로의 행복을 찾는 존재가 결코 수 없다.


인간이 고쳐지지 않는 존재라면 세상 누구도 애쓰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늘 공부를 잘할 것이니 열심히 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공부를 못하는 이는 열심히 해봤자 잘할 수 없으니 마찬가지로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가난한 이는 대대손손 가난할 것이며 부자인 이는 대대손손 부자일 것이다.

우리 안에는 이미 완성된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프로그램대로 움직일 것이니 무엇도 애쓸 필요가 없다.

사람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기에 눈을 감고도 그 사람의 일 년 후, 십 년 후, 수 십 년 후를 훤히 알 수 있다.


타인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고 어려운 일인건 맞다.

부모님들은 종종 '내 속으로 놓은 내 자식도 내 맘대로 안된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실상 내 속으로 놓은 내 자식은 물론이거니와 나 자신부터도 내 맘대로 바꿔지지 않는데 타인은 오죽하겠는가.

그렇다. 나를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타인을 바꾸는 것보단 '나'를 바꾸는 게 훨씬 더 빠르고 효과적인 일이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고 환경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한다.

'맹모삼천지교'의 뜻이 그저 맹자의 어머니 급씨가 아들의 학교를 옮긴 데에만 있진 않다.

'나'에게 있어 주변의 모든 것은 환경이다.

학교나 집, 거주하는 도시나 자주 가는 장소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 친구, 동료, 선후배, 지인 등등 '나'를 아우르는 주변의 모든 것은 환경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나'조차도 환경에 속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누군가에겐 환경이 된다.

내가 바뀐다는 건 단순히 '내'가 변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라는 환경이 바뀐다는 뜻이다.

'나'라는 환경이 바뀐다는 건 나를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는 주변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고 주변이란 환경이 달라진다는 건 곧 내가 사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이 속한 환경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을 스스로 바꾸기도 한다.

일출과 일몰의 장엄함을 모르는 사람에게 태양은 그저 눈부신 전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어느 날 그가 일출과 일몰의 장엄함을 비로소 느끼게 된다면 그제야 태양은 전등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것이다.

내가 바뀌는것이 곧 모든걸 바꾼다는 말이다.


'내가 바뀌면 세상이 모두 변한다'라는 말을 믿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내가 나를 고치면 적어도 '나는 변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걸, 고칠 수 있다는 걸 알고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애쓰며 살아갈 수 없다.

이 세상 누구든 자신의 인생에서 각자의 노력과 애씀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나는 아무 노력도 없이 그저 숨만 쉬고 살아간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삶이란 그 자체가 애씀으로 지속되는 것이기에 지금 이 시간, 여기, 현재에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애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숨 쉬고 있는 그 자체로 나는, 당신은, 우리는 고치려고, 나아지려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며 애쓰는 사람들이다.


나는 일 년 전의 내가 아니며, 십 년 전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일 년 후의 나도, 십년 후의 나도 다른 나일 것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가 아주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과거의 '나'보단 아주 조금이라도 나은 '나'이다.

나는 과거보다 좀 더 운동을 많이 하며, 좀 더 슬픔과 화를 덜 내고, 좀 더 건강하게 살아가려 한다.

좀 더 친절해지려하고, 좀 더 가만있으려 하며, 좀 더 웃으려 한다.

이렇게 예전보다 훨씬 많은 글도 쓰고 있고, 쓰고 있는 다른 글도, 쓰려고 준비중인 글도 있다.

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도 하고 고민도 한다.

그러므로 내 글은 지금보다 점점 더 나아질거라 믿는다.

모든게 지금보다 아주 조금, 단 1밀리라도 나아질거라 믿는다.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무언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변화란 때론 방향성이 없어 마치 퇴보하는 듯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면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얼마나'가 중요한가 가 아니라 '어디로'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고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고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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