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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덕 May 14. 2024

처음 만난 베토벤

베토벤 9번 교향곡 라단조


맑음과 흐림이 함께했던 5월의 어느 날,

처음 베토벤을 만났다.




빰빠바밤~

혹은 쾅콰과광~


이 곡이 무슨 곡인지 아시겠는가?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네 글자만으로도 이 곡의 이름이 단번에 떠오를 것이다.

심장을 직접 때리는 듯한 강렬한 음과 그 음에 꼭 맞는 제목이 붙어있는,

그렇다. 바로'운명'으로 더 잘 알려진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이다.


내가 아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운명'이라는 이름과 '빰빠바밤'이라는 네 개의 음.

거기서 조금 더 안다는 게 고작, 베토벤은 청각을 잃고도 놀라운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

(그 놀라운 음악이 어떤 건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은 관심도 없었고 내 인생은 그걸로도 충분히 괜찮았다.


그러던 얼마 전,

비가 예보되어 있던 그날, 일을 마치고 해안의 공원을 따라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나는 오랜만에 가져 나온 이어폰을 귀에 끼곤 클래식이나 들어볼까란 생각에 무심결에 음악을 재생했다.

바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라단조'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흐릿한 한 쪽 하늘은 거대한 서사의 시작을 알렸고, 맑았던 한 쪽 하늘은 무수한 탄생을 노래했다.

나무는 알 수 없는 거대한 리듬에 맞춰 가지를 흔들었고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원초적 우주의 흐름에 동화되어 움직였다.

기쁨과 놀라움과 신비한 마음이 뒤섞여 일어나고 늘 보던 일상의 풍경은 틀을 벗어나, 혼돈과 탄생과 무분별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춤의 장'으로 재탄생하였다.


다르게 다가오는 세상

분명 처음 듣는 음악이었고 어떠한 설명도 없었지만, 이 곡은 '탄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처음엔 빅뱅과 같은 공간의 폭발과 혼돈을, 다음은 혼돈 속 생겨 나온 무질서한 존재들의 원초적 생명을, 그다음은 그 속에 부여되는 질서를, 또 다음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평화를 그리고 장엄한 선언을, 또한 찬양과 희열을 노래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귀에 매우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영화로운 조물주의 오묘하신 솜씨를

우리들의 무딘말로 기릴줄이 없어라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분명 중고등학교 음악시간 때 배운 바로 그 노래였다.

'아..... 그 노래가 이 곡이었다니.... 나는 정말 세상의 겉만 보고 살고 있었구나...'


나는 1시간 6분의 곡이 모두 재생될 때까지 계속 걸었고 흘러가는 구름과 내리쬐는 햇빛, 솟아오른 풀들을 보았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 세상 속에서 처음 베토벤을 만났다.

나는 몰랐다. 클래식의 세계가 이런 곳인지. 음악이 이런 것인지.

순간 왜 지금껏 아무도 내게 이런 걸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 비슷한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 다만 내가 보지 않으려 했을 뿐.


나는 아직도 클래식에 대해 알지 못한다.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바흐도 알지 못한다.

조성진과 임윤찬이 왜 대단한지도 모르고 지휘자들이 짓는 비장한 표정의 의미도 모른다.

그렇지만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천천히 그들의 음악과 그들의 소리와 그들의 메시지를 알아보고 싶다.


토끼풀로도 불려지는 클로버는 매년 피어나고 매년 꽃을 피운다.

흰색의 꽃이 가장 흔하지만 분홍의 꽃도 간간히 볼 수 있다.

이맘때 쯤이면 길가나 공원에 흩뿌려지듯 피어있는 클로버 꽃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이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기도 하는데 의외로 예쁘다.)

작년까진 그렇지 않았는데 올해는 유독 이 클로버 꽃들이 참 예쁘게 다가오고 더 자주 눈에 띄인다.

늘 있었지만 이제야 눈에 띄는 꽃.

나의 관심과 주의 속에 새롭게 태어난 꽃.

내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주변 곳곳엔 늘 새롭고 놀라운 세계가 숨어있다.

그 세상들은 꼭꼭 접혀 숨어있지만 언제든 열린 마음으로 눈길만 향한다면 그 세계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모든 걸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세계 속 꼭꼭 접혀있던 베토벤을, 그 날 처음 만났다.




혹시, 아직 이 곡을 못들으신 분이 있다면 꼭 바깥에 나가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사람이 보다 아름답고 장엄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https://youtu.be/_pbvLycQ0f4?si=fWTVQRdTCZTOAM4r

베토벤 9번 교향곡: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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