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0일
어제 상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친구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곧은 성격에 거짓말을 못하고 마음에 의문 품길 싫어하는 그 친구의 성격은 위계 가득한 회사 생활에 참 불리하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회사 생활이란 게 그리 녹록지는 않을 것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나 생각보다는 회사의 방침과 상사의 결정에 종종 휘둘리고 만다. 때론 그것에 맞서 저항도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의견은 묵살되고 피해만 고스란히 떠안는다. 그렇게 조금씩 깨지고 닳으면서 사람들은 모종의 합의점을 찾으며 회사란 곳에 적응해 간다.
그러나 불합리나 부조리가 곧 악은 아니고 합리와 조리가 곧 정의인 것도 아니다. 당시엔 그렇게 보일지라도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그 방법이나 방식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때로 나의 옳음은 누군가에겐 틀림이 되고, 나의 틀림은 누군가의 옳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는 옳음과 틀림이 얼마간씩 모두 있어 관점과 방향에 따라 어떨 때는 맞기도 하며 어떨 때는 틀리기도 한다.
특히 회사라는 무형의 물체는 무기물인 동시에 유기물이므로 단순한 흑과 백, 혹은 선과 악으로 나누어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한 명의 사람도 들여다보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회사는 오죽 복잡하겠는가. 그런 복잡한 곳에서 살아가는데 어느 누가 힘들지 않겠는가. 게다가 회사 밖 일상의 상황까지 생각한다면 아마도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은 배가 되어 느껴지리라.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회사 생활을 잘해나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일을 잘하는 것? 흔히 말하는 줄을 잘 서는 것?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 인간관계가 좋은 것? 워라밸을 유지하는 것?
글쎄다. 십 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다. 아마 모두가 중요할 것이다.
그래도 한 마디 보태자면 좀 더 즐겁고 쉽게 회사 생활을 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즉 업무 완수로 얻는 성취감을 좋아하는지, 꾸준한 레벨업을 더 선호하는지, 좀 더 많은 급여를 더 선호하는지, 사람들과의 교류를 보다 더 선호하는지 등의 자신이 좋아하고 적성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행동한다면 보다 수월한 회사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우선인 건 어떤 경우라도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불합리하고 폭압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그 상황에 매몰되기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겨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론 굽히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도 하다. 당장에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숙고의 시간을 가지며 해법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흘려버릴 수도 있다. 어차피 지나가는 일들이고 십 년? 아니 삼십 년 정도 지나면 아무도 기억 못 할 일들일테니 그냥 마음 편히 흘려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쉽지 많은 일이란 것은 안다. 나도 그러니깐. 그래도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회사에서 겪은 좋지 못한 일에 대해선 일상에서 좋은 것들을 더욱 찾으며 위로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회사일이 좀 가벼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회사 역시 충분히 인간적인 방식의 해법을 찾으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회사가 어떤 방향성을 위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해야 할 때 회사는 그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성실한 자세로 직원들에게 동참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충분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그것에 동참하지 않을 직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회사는 무형의 유기물이지만 그 속은 모두 유형의 유기물인 인간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 규칙과 질서를 따르면서도 인간성 역시 일정 부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쉽지만은 않다. 직원의 입장에서 회사는 늘 강요만 하고 상사는 늘 짜증만 낸다. 보다 인간적인 관심과 동참을 권해주길 기대하지만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스럽다. 전화 온 친구의 불만도 그것이었다. 회사의 의도도 알겠고 왜 해야 하는지도 알겠는데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훨씬 더 마음 상하지 않고 일할 수 있음에도 현실은 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그것이 친구의 불만이었다.
그럼에 역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회사 생활에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나'를 지키는 것이다.
되도록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말을 하고 나쁜 것은 빨리 잊는 것. 일과 일상의 경계를 잘 지켜나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것. 이런 것들이 나를 지키는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한 회사에서 일하며 그 회사가 지급하는 급여를 받는 동안 그에 따른 신의 성실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한다. 규정에 맞는 행동을 하고 일을 하는 동안은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몫의 일 만큼은 해야 한다. 이것 역시 '나를 지키는 것'에 있어 중요한 방법이다. 단순히 시간만 때우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늘어나는 건 불만과 고집뿐이니 밀이다.
회사 생활. 어렵다.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살자고 하는 일이지 일하려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적게 스트레스를 받고 조금이라도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해야 한다.
안 할 수는 없다면 최소한 불행하게는 하지 말아야 되지 않겠는가.
내 몫의 일은 내 몫만큼 충분히 하고, 주어진 시간들을 되도록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에 할애하며 사람들의 악함 보다는 선함에 좀 더 시선을 두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 삶이, 회사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