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바레(がんばれ)
행복 목욕탕(2016)
감독: 니카노 료타
출연: 미야자와 리에, 스기사키 하나, 오다기리 죠, 아토 아오이
간바레(がんばれ)
행복 목욕탕은 '간바레(がんばれ)' 영화다.
그런 장르가 있어서가 아니라 영화가 시종일관 얘기하는 게 '간바레'기 때문이다.
간바레의 우리말 뜻은 '열심히 하다', '힘내다'등인데 주로 기운을 북돋고 마음을 다지기 위해 사용된다. 그러니 '힘내라' 또는'힘내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 일본어 '간바레'와 우리말 '힘내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보인다. 두 단어 모두 기운을 북돋고 마음을 다지기 위한 건 같지만 힘의 방향이 조금 다르다. '힘내라'의 힘은 현실이 어떻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이고 '간바레'의 힘은 현실을 견디고 버텨내는 힘이다. 덧붙이자면 힘내라가 지향하는 방향이 앞이라면 간바레가 지향하는 곳은 지금 또는 과거다. 간바레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만 견디고 버텨냄으로써 밀려가는 느낌이다. 어떤것이 더 좋은 단어인가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둘 다 좋은 말이며 어려운 상황에 필요한 힘이다. 단지 개인적 생각으로 '간바레'는 견디고 버텨내는 것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행복 목욕탕은 모두가 '간바레(がんばれ)'를 하고 있다. 견디고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견디고 버텨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긴 하다.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 안 '행복 목욕탕'이 주는 느낌과 달리 영화의 등장인물 모두는 불행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남편이 도망간 여자, 지독히 가난한 집안,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아이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 특히 미야자와 리에가 연기한 '사치노 후바타'에게 세상의 악의를 한껏 끌어 담은 것 같은 불행한 상황을 설정해놓았다. 막장 중의 막장인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분위기가 어둡고 무거운 건 아니다. 불행이란 불행은 모조리 끌어안고 있는 주인공인 '사치노 후바타'가 어둡고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후바타는 자신의 상황을 언제나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침착함과 온화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주인공만 불행에 무딘 것은 아니다. 후바타의 가족 모두가 그렇다. 불행의 조건을 잔뜩 갖췄지만 왜인지 그들은 불행을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것이 그들이 '간바레'하는 방식이다. 언뜻 이러한 것이 긍정성이나 초월성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불행에 둔감한 건 '단절'에 가깝다. 마치 불행을 존재하지 않는 유령처럼 대하는 것이다. 후바타와 가족들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영화를 본다면 이 가족들이 정말 불행한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라고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억지스럽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억지스러운 설정이라 할만함에도 배우들의 연기와 그 속에 녹아있는 어떤 문화적인 흐름들이 영화의 전반적 스토리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는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행복 목욕탕'은 충분히 재밌는 영화고 좋은 작품이다. 일본 영화를 종종 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미야자와 리에와 오다기리 죠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특히 미야자와 리에의 표정 연기가 그야말로 대단하다.
극 중 괴롭힘 문제로 딸의 학교를 찾은 미야자와 리에가 물감 범벅이 된 딸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래서 어떤 색이 좋았어?"라고 묻는 장면에서의 표정 연기는 말 그대로 사람을 화면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게 한다.
행복 목욕탕을 재밌게 보았던 이유엔 캐스팅도 한몫했다.
일본의 대표 미인 배우인 미야자와 리에는 도저히 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모습을 기막히게 보여줬고 마찬가지로 대표 미남 배우인 오다기리 죠 역시 무능한 백수의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아역 배우들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느낌의 아이들 같아 몰입해 볼 수 있었다. 특히 막내딸은 연기자라기보다 정말 그냥 촬영장 옆에 서있는 보통의 아이를 즉석에서 데려다 배역을 준 것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결말 부분은 좀 충격적이었다. 행복 목욕탕의 원제인 '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탕을 데울 만큼 뜨거운 사랑)'과도 관련이 있는 결말인데 나는 그 결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문화 차이겠지만 뭔가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영화는 재밌게 잘 봤지만 그래도 슬픔은 슬픔대로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도 기쁨으로 아픔도 기쁨으로 고통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건 대단히 의미 있고 훌륭한 일이겠지만 모든 감정이 하나를 향해 간다면 그것 역시 잔인한 일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영화를 잘 보긴 했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엔 전적으로 동감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시청을 추천하는 영화다.